산업 기업

[여명]"도둑은 도둑으로 막아야 한다"

김홍길 성장기업부장

타다 갈등부터 부동산 대책까지

정부 설익은 규제로 사태 더 악화

진정한 혁신 이끌고 집값 잡으려면

시장 잘아는 전문가에 정책 맡겨야




승합차 호출서비스 타다를 둘러싼 갈등은 스타트업과 구산업인 택시업계 간 필연이라고는 하지만 정부의 미숙한 대처가 일을 더 꼬이게 했다. 영국도 과거 자동차가 막 확산될 때 마차를 끄는 마부들이 실직할 수 있다는 우려에 마차 앞에 붉은 기를 꽂아놓고 자동차는 말보다 앞서면 안 된다고 막아 세웠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태동시켰지만 이 일로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은 독일로 완전히 넘어가버렸다. 게임체인저가 여기저기서 생겨나고 있는데도 정부는 오래전 영국이 했던 것처럼 ‘붉은 깃발’ 규제를 고민없이 꺼내 들었다. 택시 표만 보고 국민 편익에는 눈을 감았다. 그래 놓고선 신사업 타협모델을 만들겠다는 대책을 위한 대책을 내놨다.

잘 아는 벤처 대표는 사석에서 “몇 글자의 규정 해석 때문에 (벤처들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며 “관료들이 문제”라고 핏대를 세웠다. 정해진 규정 외에는 다른 상상력을 발휘할 생각을 않다 보니 관료는 답답함의 상징이 됐다. 다른 스타트업 대표는 실증 특례를 신청했더니 사업을 함께 검증할 지방자치단체를 먼저 구해 와야 한다며 차일피일이라고 한다. 현행법에 저촉될 가능성 때문에 지자체가 몸을 사리는 마당에 직원 2~3명 규모의 벤처기업에 눈을 줄 지자체가 만무한데도 1년이 다 돼가도록 “지자체를 먼저 컨택해서 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한다. 이 벤처기업은 사업을 접을까 고민하고 있다.


부동산정책은 왜 또 이 모양인가. 한 지인은 10년 전 강남 재개발 지역에 자그마한 빌라 지분을 사놨다가 분양공고를 앞두고 있었지만, 강남 집값 잡겠다고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하는 바람에 분담금을 추가로 7~8억원 내야 한다고 한다. 10년간 기다렸던 입주를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 지인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닌데 (정부가) 나한테 왜 이러는 것이냐.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냐”며 장탄식이다. 대입 정시를 늘리고 자사고·특목고를 없애면 강남 집값이 더 오른다는 사실을 당국만 모르는 걸까. 알면서도 대책이라고 내놓은 걸까. 만나는 사람마다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라고 했다.


다른 지인은 최근 강남 복덕방을 찾았다가 굴욕 아닌 굴욕을 겪었다. 정시 확대 방침이 공개되면서 강남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자 위례에서 강남으로 이사하려고 새 아파트를 알아보려던 참이었다. 복덕방은 대뜸 매도자가 ‘네고(가격협상) 없음’ 등의 5가지 조건을 내걸었다는 것이다. ‘당신 말고도 집 살 사람 줄 섰다’는 강압적인 분위기에 ‘가격’ 얘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하고 돌아섰다는 그는 “이런 난리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대책을 내면 집값이 오르고 또 대책을 내고. 최근에는 보유세 부담을 키우고 사상 초유의 ‘15억원 아파트 대출 금지’라는 부동산대책을 내놨다. 굵은 대책으로만 4번째고, 자잘한 대책까지 합치면 18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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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정책의 악순환이다. 정부는 수시로 규제를 없앴고 집값을 잡아간다고 장황하게 수치를 나열하고 있지만 주변에서는 이런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다.

관가에서는 ‘(공무원) 1급은 1년만 일하고 차관은 차만 다니고 장관은 장기 출타하는 사람’이라는 오래된 우스갯소리가 있다. 과거에는 가볍게 웃어넘겼지만 요즘에는 진담처럼 돼버려 입에 올리기 부담스럽다.

적극 행정이니 면책이니 하면서 아무리 당근을 줘도 현장 관료는 자신의 일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을 ‘적당한 선’이 어딘지만 고민할 뿐이다. 부처마다 이전 정부의 핵심과제에 대해 적폐를 조사하면서 관료들의 ‘복지부동’은 더 심해졌다.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지만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프 케네디는 하버드를 졸업한 지 1년 후인 1913년 돈을 빌려 파산 직전의 지방 은행을 인수해 정상화시켰다. 20대에 은행장이 됐고 증권업으로도 많은 재산을 모았다. 돈 버는 수완이 탁월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부자에도 올랐으며 많은 정치인들을 후원했다. 그중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통령이 됐다. 후원의 대가였는지는 모르지만, 조지프는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처음 신설된 증권거래위원회의 초대 회장에 올랐다. 반대편에서는 증권시장을 감시하는 증권거래위원회 회장 자리에 조지프를 앉히는 것은 “도둑을 앉히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지프의 이력이 이런 비판을 키웠다. 조지프는 응수했다. “도둑은 도둑으로 막아야 한다”고. 궤변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금융시장을 잘 아는 사람을 앉혀야 시장의 불공정 거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을 에둘러 한 말이다. 제대로 된 혁신을 이끌고 집값을 잡기 위해 이제는 시장의 심리를 잘 읽고 대처할 수 있는 ‘도둑을 막을 수 있는 도둑’에게 정책을 맡겨보면 어떤가.
what@sedaily.com

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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