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에서 교수들이 창업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심지어 공과대나 자연과학대 교수조차 많은 데이터를 다루며 연구개발(R&D)을 하는데도 쉽사리 창업에 뛰어들지 않는다. 창업해 힘들게 교육·연구와 기업 운영을 병행하더라도 교수 업적평가나 정부 R&D 과제평가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논문을 위한 논문’ ‘특허를 위한 특허’가 남발되며 대학이 ‘상아탑’에 머무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평소 연구하던 산업 인공지능(Industrial AI) 기술로 산업 데이터를 분석해 발전소나 공장 설비의 고장을 예측하는 솔루션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교수가 있다. 산업정보예측 솔루션인 ‘가디원’을 앞세워 지난 2016년 ‘원프레딕트(OnePredict)’를 창업한 윤병동(49)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다.
윤 교수는 최근 서울대 연구공원 내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공대 교수님들이 더 많이 벤처·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들고 기술이전을 해야 한다”면서 “대학에서 창업문화를 장려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교수나 연구원의 기술기반 창업이 활성화돼야 대학도 살고 벤처·스타트업도 활성화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는 일부 대학에서 창업을 독려한다면서도 규제가 많다 보니 힘들다며 중도에 포기하려는 교수도 여럿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업인 ‘툴젠’의 최대주주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가 거액의 특허를 빼돌렸다는 주장으로 곤욕을 치른 뒤 대학이 다른 창업 교수에게도 자꾸 ‘서류를 더 내고 소명을 하라’는 식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툴젠 사건은 교수의 지식재산에 대해 학교가 대응을 잘못해 생긴 것인데, 그로 인해 다른 창업 교수들에 대해서도 규제하려는 경향이 있어 ‘회의가 든다’는 교수들도 있다”고 전했다.
그가 속한 기계항공공학부 역시 최근 국가적으로 벤처·스타트업에 대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업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윤 교수보다 앞서 창업한 같은 과 교수들이 일부 활동하고 있을 뿐 신규로 창업하려는 교수들이 여전히 많지 않다는 것이다. 기존 창업자는 액정표시장치(LCD) 검사장비에서 독보적인 에스엔유프리시젼의 박희재 교수와 나노기술로 식물의 상태를 센서로 측정해 처방하는 시스템으로 관심을 끄는 텔로팜의 이정훈 교수, AI를 활용한 로봇 업체인 세이지리서치를 창업한 박종우 교수 등이다. 윤 교수는 “400명 가까운 서울대 공대 교수 가운데 수십명의 창업자가 있으나 진지하게 회사를 운영하는 경우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했다. 창업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논문 실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게 대학가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때문에 (대학원) 학생이나 졸업생의 창업 마인드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안정적인 대기업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 취업을 선호한다”며 “성장성이 큰 벤처에 들어가 충분히 경험을 쌓은 뒤 창업하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교수직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고 정부 지원금도 많은데 교수들이 창업을 꺼리는 이유는 뭘까.
그는 우선 창업에 성공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다 대학에서 여전히 교육과 연구에 치중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창업 교수가 시간이 부족해 논문이 줄어들면 업적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데 정부가 R&D 과제선정에서 일부 가산점을 줘 도전을 장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수 업적평가와 R&D 과제평가가 논문·특허 위주인데 기술이전은 물론 창업요인을 넣어 고용창출과 매출 등을 반영해야 한다”며 “하지만 교수님들이 반발해 시행되지 않는데, 이는 심지어 창업에 유리한 이공대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R&D 과제평가의 경우 돈을 주는 한국연구재단이 최소한 이공대만이라도 창업요인을 넣어 드라이브를 걸면 대학도 따라갈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연구재단이 연간 5조원가량을 교수들의 기초·개발·응용연구에 지원하고 있어 시스템을 바꾸면 파괴력이 클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는 좋은 지식재산권(IP)이 많이 나오지 않아 기술이전료 수입도 높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대학(전문대 포함 418곳)의 기술이전료는 2017년 774억원으로 연구자 보상(417억원)과 대학의 특허 출원·유지·등록비(651억원)를 제외하면 대학 입장에서는 남는 게 없는 셈이다. 윤 교수는 “대학의 논문도 질보다 양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논문과 특허 중 실제 사업으로 연결되는 비중은 아주 작다”며 “연구주제도 유행에 따라 몰려다니고 선진국을 모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다 국제 공동연구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미국에서의 교수 경험을 소개하며 대학 창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미국 대학의 경우 스탠퍼드대 졸업생이 창업한 기업의 연매출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가 넘고 프린스턴대의 기술이전료 수입(2015년 1억4,200만달러)이 한국 대학 전체의 두 배 이상인 현실을 진지하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은 교수 평가에 논문 등 정량적 평가는 물론 창업을 통한 고용창출, 특허 사업화, 매출, 사회 기여 등 정성 평가를 포함시키고 있다”며 “교수도 봉급으로 컨트롤하는데 연봉이 세 배까지 차이가 난다. 성과가 부진하면 승진도 늦고 연봉을 적게 줘 연구실 운영조차 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교수 입장에서 연봉이 늘지 않으면 퇴직연금을 받는 것과 비교해 손익분기점이 같아질 때 더 이상 대학에 머무를 이유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메릴랜드대에 있을 때 어떤 교수가 ‘학회에 간다’고 하고 풋볼 경기장에 갔다가 해고되는 것을 봤다”며 “교수에게 자율성을 주지만 연구비 횡령 등 연구부정을 적발하면 테뉴어(종신교수)라도 해고는 물론 민형사 소송을 한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정부가 AI 국가전략을 내놓고 빅데이터 활성화를 꾀하며 ‘혁신과 포용성장’을 외치고 있지만 기술도 있고 지원도 많은 이공계 대학조차 창업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자신도 창업할 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학연 공동법인 사업에 선정돼 5년간 연 3억원씩을 지원받고 있다고도 소개했다.
대학 산학협력단의 전문성 부족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교수가 연구비를 따면 약 30%는 산학협력단(단과대·학과 포함)이 간접비로 징수하는데 여전히 행정부담이 작지 않다”며 “특허도 산단에 귀속되는데 교수의 특허 출원을 돕거나 기업과 연결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교수가 창업한 회사는 산단에서 특허를 사거나, 실시권을 받거나, 대학 기술지주회사에 지분을 주고 사오는데 국내 대학은 특허를 잘 활용하지 못해 3년 이상 지나면 제값을 받지 않고 처분한다는 것이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He is…
미국 아이오와대 기계공학과 박사를 거쳐 아이오와대 연구교수, 미시간공대 기계공학과 조교수, 메릴랜드대 기계공학과 조교수,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정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 2016년 10월 원프레딕트를 창업했다.
하단-원프레딕트는
윤병동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지난 2016년 창업한 원프레딕트는 발전소나 공장의 설비고장 예측 솔루션인 ‘가디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산업 인공지능(Industrial AI) 기술로 데이터를 분석해 공정설비를 모니터링하고 진단·예측한다. 지난해 한국기계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는 ‘올해의 10대 기계·기술상’을 받았고 AI와 기계공학의 4대 역학지식을 융합해 글로벌 데이터챌린지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다.
가디원은 발전소 터빈과 정유공장의 대형 원심압축기, 송전·변전 설비, 반도체 장비, 풍력발전기, 항공기 엔진, 배터리 등 활용범위가 다양하고 가격경쟁력도 갖췄다는 평을 받는다. 한국서부발전의 풍력발전소 터빈이나 한국중부발전의 화력발전소 스팀 터빈 등에 적용한 결과 높은 정확도로 생산성 제고와 비용절감에 기여했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에쓰오일(변압기), 일진글로벌(모빌리티 인텔리전스) 등 대기업 고객도 크게 늘었다. 그는 “대학에서 많은 산업 데이터를 다루며 기술력을 키울 수 있었다”며 “모든 소프트웨어(SW)에 유지보수 기술을 넣어 발주처에서 자체 운영할 수도 있다”고 소개했다.
윤 교수는 “올 들어 연구개발(R&D)과 영업 부문 직원 등을 30여명이나 채용하는 등 일자리도 크게 늘리고 있다”면서 “교수가 가르치고 R&D만 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늘리는 게 보람 있는 것 아니냐”며 활짝 웃었다.
이 회사는 내년부터 인더스트리4.0의 본고장인 독일의 셰플러를 비롯해 글로벌 고객을 본격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해외 전시회에도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그는 “계약 단계에 있는 셰플러는 산업용 베어링 시장의 절대 강자로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플랫폼에 원프레딕트의 예측진단기를 탑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전력·자동화기술·로봇에 강점이 있는 스위스 ABB나 미국의 자동제어기기·전자통신시스템 장비사인 허니웰, 미국 IBM과도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윤 교수는 “올해 매출이 지난해보다 두 배 많은 20억원 정도인데 내년에는 약 40억원, 오는 2021년 100억원, 2022년에는 300억원까지 늘어날 것”이라며 “세계 산업 예측 솔루션 시장이 갈수록 확대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