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가 다가오면 괜히 바빠진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잘하고 못한 점을 생각하며 새해 계획을 세운다. 이 때문에 12월과 1월은 사람이 한 해 중 가장 순수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또 연말연시에 평소와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하니 뭔가 좀 이상하다. 평소 먹던 음식과 다른 것을 찾아 외식하거나 해넘이와 해돋이 명소를 찾아 평소 갑갑하던 마음을 떨쳐내고 희망을 품으려 한다. 이러다 보니 개인·가족·회사·단체마다 부산스러운 일정을 보낸다.
평범함과 색다름 또는 보통과 특별은 사람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 고려하는 핵심이다. 기념일이니 뭔가 특별하게 보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그럴 때일수록 평소 가던 곳에서 차분하게 보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가족 행사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색다른 추억을 만들 좋은 기회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밖에 나가봐야 떠들썩할 뿐이니 그냥 집에 모여 식구끼리 오붓하게 밥 한 끼 하자는 사람도 있다.
색다른 것을 하면서 우리는 자극을 받아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다. 반면 평범한 것을 누리면 우리는 일상의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낀다. 색다른 것이 아무리 좋다고 해서 평소에 한두 번 할까 말까 한 것을 매일같이 할 수 없다. 그러면 색다른 것이 활력소가 아니라 위험하게 느껴진다. 평범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삶이 무료하고 무미건조해 일상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치기 쉽다. 이렇게 색다름과 평범함이 어울려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간다.
‘중용’은 3,500여자에 불과하지만 유학에서 ‘대학’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四書)로 불릴 정도로 핵심적이고 동아시아 사상사에서도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중용’은 시대가 색다름으로 달려가자 평범함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웠다. 예컨대 출세가 보장되면 살상의 기계가 돼 온갖 전장을 누비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입장을 뒤집고, 복수를 위해서는 온갖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극단적인 언행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자 하나둘씩 그 방향을 바라봤다.
‘중용’은 극단으로 치닫는 시대에 평범함의 가치를 돌아보라고 제안한다. 아무리 익스트림스포츠가 짜릿하고 스릴 넘친다고 해도 살면서 한두 번 할 수 있지 매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범함은 눈에 띄지 않고 특별한 자극을 주지 않더라도 쉽게 찾으면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가져다준다. 평범함은 늘 먹는 집밥이고 편하게 입는 옷이며 늘 만나는 친구이며 누구나 지켜야 하는 공공선이다. 즉 색다름으로 치닫는 세상 사람들에게 평범함으로 돌아와 균형을 잡자고 제안한다. 언젠가 평범함에 지치고 힘겨워한다면 색다름으로 달려가라고 권하며 균형을 잡자고 제안할 것이다.
‘중용’은 주위에 늘 있어서 조금도 특별한 것이 없는 실례로 ‘시경’의 시를 인용했다. “솔개가 하늘 높이 날고 물고기가 연못에서 헤엄친다(연비려천鳶飛戾天 어약우연魚躍于淵).” 솔개도 활 쏘는 사수가 보이면 맘껏 하늘을 날지 못하고 물고기도 낚싯대를 드리우는 낚시꾼이 많고 그물이 물에 들어오면 몸을 숨기기에 바쁘다. 솔개나 물고기를 잡는 위험 요인이 없으면 하늘과 물속을 유유하고 한가롭게 노닐 수 있다. 8자를 4자로 줄인 ‘연비어약(鳶飛魚躍)’은 평화롭고 아늑한 일상의 정경을 압축적으로 나타낸다.
시간이 나면 추사 김정희가 말년을 보낸 과천 주암동의 과지초당(瓜地草堂)이나 그가 태어난 예산의 고택을 가보자. 집의 기둥에 걸린 대련을 볼 수 있다. 가까이 가면 해설과 함께 다음의 내용을 만날 수 있다. “가장 좋은 반찬이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大烹豆腐瓜薑菜), 가장 좋은 모임이란 부부, 아들딸, 손주라네(高會夫妻兒女孫).” 추사가 71세 때 쓴 예서체 대련이다.
71세라고 하면 세상에서 맛있는 음식을 웬만큼 먹었고 이름난 모임에 찾아가봤을 것이다. 노년에 이르니 화려하지 않지만 가까이에 있는 일상의 소박한 음식을 자주 찾게 되고, 조명을 받지 않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만날 수 있는 가족을 자주 보게 된다. ‘중용’의 ‘연비어약’에서 그리고 있듯이 추사도 평범한 일상의 삶이 지닌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