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이런 공수처로 권력형 비리 수사할 수 있겠나

여권이 밀어붙이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에 권력형 비리 수사를 무력화할 수 있는 독소 조항이 추가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여야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누더기 선거법’ 처리를 놓고 막판 줄다리기를 하는 가운데 ‘통제받지 않는 괴물’로 변질될 수 있는 공수처를 놓고도 공방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과 4개 군소정당이 참여한 ‘4+1협의체’가 최근 합의한 공수처법 24조에는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 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고 공수처가 수사 개시 여부를 회신해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당초 백혜련 민주당 의원이 발의하고 4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수처법에는 ‘공수처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수사는 공수처의 이첩 요청 시 다른 수사기관이 응해야 한다’고 돼 있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최근 수정안에도 이 조항을 그대로 살렸다. 공수처가 이 같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게 된다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의혹과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등 권력 비리 규명은 어렵게 된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권력 비리를 공수처가 덮어버려도 다른 제어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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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은 공수처의 기소권 견제를 위한 보완 방안으로 거론되던 ‘기소심의위원회’도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추천위원회가 제시한 후보 2명 중 1명을 대통령이 공수처장으로 임명할 때 ‘국회 동의’를 얻도록 하는 내용도 빠졌다. 공수처 검사 요건도 ‘변호사 자격을 10년 이상 보유하고 재판·수사·조사 업무를 5년 이상 수행한 사람’으로 완화했다.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공수처 검사로 대거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공수처가 견제를 받지 않는 ‘초슈퍼 사정기관’으로 변질될 우려가 높다. 권력 비리를 철저히 수사하는 순기능은 하지 못하고 되레 정적들의 뒤를 캐는 역기능만 수행할 개연성이 농후하다. 여권이 공수처 설치법를 강행 처리하면 후유증을 감당할 길이 없다. 지금이라도 여야 협상을 통해 공수처 견제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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