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문화

[문화재의 뒤안길]경주 남산과 무덤

구한말 이장 열풍에 무덤이 사찰터 차지

경주 남산의 용장사 터. /사진제공=경주 남산연구소경주 남산의 용장사 터. /사진제공=경주 남산연구소



세계유산이자 국가사적이며 동시에 국립공원이기도 한 경주 남산은 계곡마다 불상과 탑을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다. 남산의 바위 속 부처님은 환한 미소로, 때로는 근엄한 표정으로 답사객을 맞이해준다. 이곳 남산에 사찰 터만 무려 150여곳이나 되니 과거 전성기의 규모나 위용이 어떠했을지 가늠해볼 수 있겠다.


지금은 대부분 폐사돼 수려했던 과거를 짐작할 뿐인 곳들로 당나라 사신이 “이 절이 폐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던 천룡사가 있다. 조선 시대 생육신 중 하나인 김시습이 숨어 ‘금오신화’를 집필했던 용장사와 은적암 등 신라 때부터 조선 말까지 법통이 유지된 곳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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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금당이 세워졌던 곳에 지금은 어김없이 조선 말 이후 일제강점기 시절에 조성된 무덤만 남아 있다. 비단 남산뿐 아니라 전국의 좋은 사찰 터는 거의 무덤들이 차지하고 있다. 왜 법당 터에 이렇게 무덤들이 조성된 것일까. 그 해답은 흥선대원군이 1846년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을 옮긴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2대에 걸친 천자(왕)의 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리하여 충남 예산에 있던 가야사라는 절을 강제로 폐하고, 연천에서 예산으로 이장을 강행해 결국 나라를 호령하고자 한 자신의 소원을 성취했다.

구한 말 산 속의 많은 사찰과 암자들이 문을 닫자, 민간에서는 흥선대원군의 사례를 좇아 자기 자손들의 번영을 위해 좋은 절터에 조상 모시기를 따라 했다. 남산국립공원관리공단은 6,000여기의 무덤 중 1,000기를 이장했다고 하니, 이제라도 더 박차를 가해 세계유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이은석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장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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