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우리도 함께 일하는 식구"…직장 내 '서포터'들의 애환

대학·병원·로펌·국회 일반직의 이야기

비전문가인 탓에 전문가의 갑질 견뎌야

"모든 직원이 소통할 수 있는 수단 필요"

/이미지투데이/이미지투데이



“저희는 회사의 메인(main)이 아닌 서브(sub)에 불과합니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도 자존감이 낮아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저희를 대하는 일부 메인 직원들의 태도 때문이죠.”

조직 내에서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있다. 조직의 주요부서가 아닌 지원부서 직원들이다. 주요부서 직원들 뒤에서 그들을 보조하는 게 이들의 업무다. 대학, 병원, 로펌, 국회에서 교수, 의료진, 변호사, 국회의원 등 전문가 집단을 제외한 일반직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이 없으면 모든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이들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비(非)전문가인 탓에 조직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그간 조직 내 ‘갑’에 가려져 들리지 않았던 ‘을’의 고충을 들어봤다.

◇“교직원이 ‘신의 직장’이라니…”=서울의 한 대학 학사팀 교직원 A씨는 업무 중 분노가 치솟을 때가 많다. 팀에서 추진 중이던 학사 관련 계획이 교수의 한 마디에 정반대로 바뀌는가 하면, 아예 사라지는 경우도 있어서다. 팀원들이 몇 주에 걸쳐 머리를 맞대고 짜놓은 프로그램의 운명이 교수가 큰 생각 없이 던진 말에 달렸다는 사실은 A씨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A씨는 “대학 교직원은 정시 퇴근과 연차 사용이 자유로워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지만 대학의 진짜 ‘신’은 교수”라며 “교직원도 저마다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데 교수가 자꾸 간섭하니 힘이 빠진다”고 한탄했다.


◇“병원 직원은 의사의 노예”=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반직으로 근무하는 B씨는 병원 내 위계질서를 ‘카스트 제도’에 비유했다. 피라미드 바닥에 있는 일반직원은 계급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의사의 말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의사들이 한 결정이 일반직원들에게 명령처럼 내려오고, 일반직원들은 그 결정이 무엇이든 곧바로 따라야 한다. B씨를 포함한 일반직원들은 한 의사 가족의 장례식에 동원돼 3일 내내 빈소에서 일을 돕기도 했다. B씨는 “일부 의사들은 일반직을 본인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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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눈에는 변호사만 ‘식구’인가요?”=서울의 한 로펌에서 일반사무를 담당하는 C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C씨는 모든 것이 변호사 위주로 돌아가는 환경에서 일하면서 박탈감에 젖을 때가 많다. 20년차 사무직원이 자식뻘인 1년차 변호사의 짜증을 묵묵히 듣고 고개 숙여 ‘죄송하다’고 말하는 장면을 목격한 순간이 그 예다. 여성이 대부분인 로펌 일반직원은 일부 남성 변호사로부터 은근한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C씨의 설명이다. C씨는 “복도에서 마주쳐 정중히 인사한 변호사가 내 인사는 무시하더니, 잠시 후 마주친 다른 변호사에게는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회상했다.

◇“여비서의 역할은 ‘내조’”=한 국회의원실 비서 D씨는 ‘여비서’로서 강요받은 일들을 털어놓으며 분노했다. D씨는 의원실의 법안 관련 사무 등을 맡는 행정비서로 들어왔지만 실제 하는 일은 허드렛일에 가깝다. 손님 응대, 커피 타기, 의원이나 상급 보좌진의 개인적 심부름 처리하기 등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는 일은 여성인 D씨 몫이다. 국회 행정비서의 대다수는 여성인데다 직급 상한까지 있어 정책이나 정무를 담당하는 보좌진과 달리 9급 하위직으로 고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D씨는 “국회에는 1980년대 운동권 문화에나 있을 법한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여전히 존재해 여성은 남성의 뒷바라지만을 해주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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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소통의 장(場)’=전문가들은 전문가 집단과 일반직 집단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집단이 일반직 집단의 애환을 충분히 이해할 기회가 마련돼야 이른바 ‘갑질’이 시정된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대로 접어들면서 각 조직에 평등주의가 확산하기는 했지만 아직 위계를 중시하는 문화도 남아 있다”며 “오랫동안 뿌리내린 문화를 일거에 바꾸기는 어려우니 조직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방법으로 구 교수는 “하는 일이 서로 다른 구성원들이 모여 조직 내 문제점에 대해 소통하는 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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