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판결도 전에 '배임이사' 해임요구 과한 것 아닌가

국민연금이 무소불위의 경영간섭이 이뤄질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주권 행사를 강행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27일 의결한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보면 기업의 잘못으로 주주가 손해를 볼 우려가 있으면 정관 변경은 물론 이사 해임까지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민간기업의 통제자 역할을 하겠다는 발상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부분은 주주권 행사의 조건이 모호하고 추상적 조항들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가이드라인은 부실한 배당정책, 배임·횡령 등으로 기업 가치가 하락했거나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이 발생해 주주 가치가 훼손되면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적정한 배당정책은 무엇이고 예상하지 못한 사안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다. 입맛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경영 개입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게 된 셈이다.


경영진의 법률 위반을 결정하면서 국가기관의 1차 판단만으로 주주 제안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 역시 독소조항이다. 최종 판결에서 얼마든지 무죄 판결이 날 수 있음에도 불법 의혹만으로 경영진을 해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배임죄는 수사기관의 과도한 적용으로 최종심에서 뒤집어지는 일이 많은데 유무죄 판단도 나오기 전에 물러나게 한다면 가뜩이나 정치적 압박이나 시민단체 등에 휘둘리는 기금위가 폭주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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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이드라인은 위헌 소지도 다분하다. 헌법 제126조는 사기업을 국유화하거나 경영을 통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는 시장경제의 골간이다. 그럼에도 연금사회주의식 행태를 이어가니 뒷갈망을 누가 할지 모를 일이다.

기업들은 지금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경영환경에 설비투자나 인수합병(M&A)은 꿈도 꾸지 못하고 인건비 등 운전자금을 구하느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부채 증가 속도는 43개국 중 세번째로 빠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을 압박해 돌아오는 것은 투자위축과 일자리 감소뿐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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