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30%를 담당하고 있는 전국 산업단지의 수출 규모가 9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비상이 걸렸다. 특히 산단 내 중소기업들은 해외 직접 투자를 통해 공장을 이전하는 등 ‘탈한국’은 더 빨라지고 있다.
30일 본지가 조사한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지난 9월 말 수출 실적은 2,625억달러로 2010년 3·4분기에 2,497억달러를 기록한 후 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4.2%나 급락했다. 올해 4·4분기 집계는 내년 1월 공식 발표될 예정이지만 이 같은 추세를 감안하면 연간 수출 실적도 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과 함께 산단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생산실적도 크게 떨어졌다. 9월 말 현재 생산액은 737조원으로 2016년 723조원을 기록한 후 최저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서도 7.4% 하락했다.
전국 산단의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은 노후화와 입주업체의 영세성 등 구조적 문제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준공된 지 30년이 지난 노후 산단은 2017년 50곳에서 지난해 83곳으로 급증했다. 오는 2022년에는 236곳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 산업단지가 1,212개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의 20%가 조만간 노후화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다.
올 3·4분기 전국 산단 입주업체 수는 10만1,784곳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 늘었다. 하지만 외형 성장에 비해 생산은 지난해보다 7.4%나 감소했다. 조선·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부진에 따른 내수 위축과 수출 부진이 주요 원인이다. 산단 전체 가동률은 80%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50인 미만 영세기업의 가동률은 65%에 머물 정도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산단은 지역경제와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데 최근 내수위축과 수출수요 감소로 실체적 위기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에 따른 수출 환경 악화도 산단 지표에 빨간불을 켰지만 더 심각한 것은 국내 인건비 상승 등에 따라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업들이 급증해 대외여건이 개선되더라도 지표가 호전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수출입은행 해외직접투자(FDI) 현황에 따르면 올 9월 말 현재 중소기업의 FDI 실적은 101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지난해 실적(100억달러)을 넘어섰다. 산단의 한 관계자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해외진출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산업은행 통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국내 설비투자 금액은 지난해 20조2,000억원에서 올해 17조1,000억원, 내년에는 16조1,000억원으로 2년 새 5조원이나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 산단의 생산과 수출을 절반 정도 차지하는 시화·창원·반월·여수 국가산단의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 국가산단은 석유화학, 전기·전자, 운송장비, 철강, 기계 등 기간 산업과 첨단 과학 기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조성한 것으로 시화 등 전국에 4개가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들 4개 국가산단의 생산은 올해 1~9월 364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감소했다. 수출액 또한 16.8% 줄어든 1,150억달러에 그쳤다. 업종별로는 기계가 22.7% 감소해 가장 폭이 컸고 전기·전자가 17.4%, 석유화학이 16.4% 감소했다. 단지별로는 여수산단의 감소 폭이 21조9,000억원으로 가장 컸다.
김경만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내수침체 장기화, 인건비 상승,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해외 리스크 상존 등 중소기업을 둘러싼 부정적인 경영환경 때문에 자금사정도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