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12월,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는 가상현실(VR) 온도조절 컨트롤러인 ‘오큘러스 터치 템프리쳐(Oculus Touch Temperature)’ 시험판을 직접 체험했다. 오큘러스 터치를 손에 들고 화면 속에서 모닥불 가까이 다가가며 “불 근처에 오니 꽤 따뜻해졌다”고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온도 변화가 느껴지면 VR이 더 실제처럼 느껴질 것”이라며 “이런 기기를 이전에 전혀 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주커버그의 자신감과는 달리 페이스북은 해당 기술의 특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국 스타트업 ‘테그웨이’가 이미 관련 특허 출원을 마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커버그가 VR 온도제어기기를 체험해본 시기는 2016년 12월이지만 테그웨이는 같은 해 11월 이미 미국 특허출원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김강희 테그웨이 대표는 “전세계적으로 특허가 90여개 출원돼있어 원천기술에 대한 보호 장치를 세워놨다”라며 “VR 시장이 열려 온도 체험이 상용화되면 반드시 우리 기술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주커버그 ‘뺨친’ 테그웨이의 기술은 유연 열전소자를 활용한 ‘온도실감장치(서모리얼·ThermoReal)’다. 열전소자는 온도차에 의해 전기를 생산하거나 이와 반대로 전기를 공급해 한쪽은 차갑게, 반대쪽은 뜨겁게 만드는 것이 가능한 부품이다. 테그웨이는 한 발 더 나아가 열전소자를 세계 최초로 유연하게 구부릴 수 있도록 개발했다. 이를 VR 장비에 적용해 온도·고통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서모리얼이다.
본격적으로 VR 헤드셋(HMD·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을 쓰기에 앞서 열전소자가 적용된 봉을 먼저 손에 쥐고 영상을 시청해봤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 속에서 한 남성이 꽁꽁 언 호수의 얼음을 깨고 살짝 발을 담근 찰나, “앗 차가워”.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남성과 달리 오히려 내가 손에 쥐고 있던 봉의 냉기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이번엔 반대로 눈 앞에서 차량이 폭발하는 순간, 언제 차가웠냐는 듯 뜨거운 열기가 감싸고 돌았다.
명칭에 ‘리얼’이 들어간 것처럼 서모리얼은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몸을 통해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정승호 테그웨이 부사장(CFO)은 “10도 단위로 온도를 올리는데까지 0.2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라며 “이론적으로는 영하 20도~영상 140도까지 가능하지만 사람에게 적용할 때는 4~40도 범위를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간단한 체험을 끝내고 이번엔 헤드셋을 쓴 뒤 VR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눈 앞에 2개의 방이 보였다. 왼쪽 문을 먼저 열고 들어가자 갑자기 따뜻한 기운이 확 퍼져나갔다. 방 안쪽의 난방기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서히 뜨거워졌다. 급기야 바로 앞에 섰을 땐 “너무 뜨거워서 나가고 싶어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오른쪽 방은 반대로 냉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방금 전까지 “뜨겁다”를 반복한 만큼, 문을 열자마자 시원한 느낌에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냉방기쪽으로 발을 디딜수록 시원함은 점차 차가움으로 변해갔다.
테그웨이는 서모리얼을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인공지능(AI)과 결합해 진화시킬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년 초 캐나다 회사와 조인트벤처(Joint Venture)를 출범시킨다. 김강희 대표는 “코딩을 할 필요 없이 머신러닝을 통해 VR에 접속하자마자 상황에 따라 온도를 곧바로 느낄 수 있는 시대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서모리얼의 기반인 유연 열전소자가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VR에 그치지 않는다. 가령 동화책과 접목해 아이들이 화재가 났을 때 소방관이 불을 끄는 과정에서의 온도 변화를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LED마스크에 냉·온찜질 기능을 더해 뷰티케어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금형 틀 안에 들어 있는 제품을 식히는 방식으로 현재는 수냉식이 활용되지만 열전소자를 붙이면 더 빠르고 정확한 온도로 냉각이 가능하다. 정승호 부사장은 “온도를 빠르게 낮추고 다시 200도 이상으로 올리려면 에너지 소비와 시간이 많이 들지만 열전소자는 그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라며 “사출 업계의 생산성이 10~20% 가량 향상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전=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영상제작=정현정기자 jnghnjig@sedaily.com
가슴에 총 한 방 맞으니 ‘겜알못’도 VR에 빠져들었다 |
모터 진동으로 촉각 전달하는 ‘비햅틱스’
피격되면 ‘드르륵’ 몸에 진동 전달
실전 총싸움 하듯 생생한 경험
올해부터 아마존서 ‘택옷’ 판매
“제가 가상현실(VR)은 물론이고 게임 자체를 너무 못하는데 괜찮을까요?”
머리엔 헤드셋(HMD·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을, 몸에는 웨어러블 조끼를, 양팔엔 팔토시까지 착용하고 나니 걱정이 밀려 들어왔다. ‘겜알못(게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VR 게임에 과연 빠져들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어느새 양손엔 쌍권총이 들려져 있었다. VR 게임 속에서 쌍권총을 들고 엉거주춤 서 있던 것도 잠시, 가슴에 연달아 상대방의 총알이 내려꽂혔다. 그와 동시에 맞은 부위의 모터도 드르륵 드르륵 울려대기 시작했다. 게임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다고 걱정했던 과거를 비웃기라도 하듯 불과 몇 분만에 “맞아라!” “죽어라!”를 외치며 총을 쏴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전 유성구 KT 대덕2연구센터에 자리 잡은 스타트업 ‘비햅틱스’는 시각에만 집중된 VR에 촉각을 더해 주목받고 있는 기업이다. 곽기욱 비햅틱스 대표는 “오감 중 촉각을 원격으로 전달해보려는 수요가 있어 카이스트 박사 과정 중 햅틱 연구를 진행했는데 햅틱을 활용한 VR 기기 창업까지 이어졌다”고 밝혔다.
비햅틱스의 ‘택슈트(TACTSUIT)’는 헤드셋과 조끼, 팔·다리 토시 등으로 이뤄져 있다. 조끼엔 앞·뒷면을 합해 40개의 모터가 달려 있다. 여러 개의 모터가 더해져 조끼의 무게는 1.7kg 수준이었다. 손으로 들었을 때는 묵직했지만 막상 입으니 무게감보다는 안정감이 느껴졌다. 올해 초 출시되는 새로운 조끼는 1.5kg으로 더 가벼워진다. 조끼를 포함해 팔·다리 등 총 70개의 모터가 각자의 자리에서 세밀한 진동을 전달한다. 곽 대표는 “256레벨까지 진동 단계를 세밀하게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은 7레벨 정도”라며 “소비자들이 쉽게 착용할 수 있고 무선이면서 너무 비싸지도 않는 수준을 고려해 모터를 정했다”고 말했다.
택슈트는 여러 개의 모터를 조끼에 그저 붙이는 것이 아닌,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하나의 모터가 진동했을 때 바로 옆 모터엔 진동이 전달되지 않아야 한다. 여러 모터와 모터 사이에 빈 공간에서도 필요에 따라 사용자가 진동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수백 수천 번 입고 벗어도 오랫동안 내구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 결과 택슈트를 착용하고 VR 게임에 돌입했을 때 눈 앞에는 안 보이던 적이 뒤에서 총을 쏘자마자 곧바로 등쪽에 타격감을 느껴 뒤돌아 반격할 수 있었다. 또 가슴 윗부분이 자주 저격되고 있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허리를 숙여 몸을 보호했다. 물론 외부에선 그저 ‘겜알못’의 몸부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터. 대부분의 승부 결과는 나의 패였다.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간단하게 나를 이긴 상대방은 게임을 만드는데 참여한 개발자였다.
비햅틱스는 햅틱 슈트 시장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곽 대표는 “비햅틱스가 등장하면서 경쟁업체들이 많이 사라졌다”라며 “제품 매출은 매년 2.5배씩 증가하고 있고 90%는 해외 매출이다”라고 밝혔다. 홀로게이트와 샌드박스 등 글로벌 유명 VR 업체들과도 파트너십을 늘려가고 있다. 올해부터는 아마존에 햅틱 조끼인 ‘택옷(TACTOT)’을 판매해 B2C(기업·개인간 거래)까지 발을 넓힐 예정이다.
촉각의 영역은 VR을 넘어 음악으로까지 이어진다. 택옷을 입고 헤드폰을 착용한 채 음악을 재생하자 리듬에 맞춰 온 몸에 진동이 느껴졌다. 힙합이든 팝이든 장르에 상관없이 각 곡마다 맞춤형 떨림을 경험할 수 있다. 곽 대표는 “콘서트장에서 음악을 들을 때 공간의 떨림이 함께 생각나는 것처럼 촉각으로도 음악을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음악을 듣는다는 표현보다는 온 몸으로 느낀다는 말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영상제작=정현정기자 jnghnji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