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학부부터 뛰는 이스라엘, 대학원도 텅 빈 韓…대학 체질 바꿔야

[창간60주년 기획 -대한민국 경제 돌파구 초격차]

<3>초격차의 조건 -R&D 혁신과 인재양성

■잠자는 상아탑 깨워라

테크니온공대, 첨단기술·이론 선제 도입으로 창업마인드 키워

졸업생 24%가 기업 CEO로 일하며 GDP의 20% 창출하는데

韓대학은 연구·혁신 외면…학생들은 취업하려 학점에만 목매

정부선 지역 선심성 지원 일색…세계적 연구중심 대학 '공염불'

/이미지투데이/이미지투데이



우리나라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해당하는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중동 변방의 작은 국가를 첨단기술 중심의 ‘스타트업 성지’로 만든 주역으로 손꼽힌다. 이 대학 출신들은 지난 1995년 이후 1,600여개의 창업기업을 세워 총 10만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근로연령에 있는 졸업생의 24%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혹은 부사장으로 일하며 이스라엘 국내총생산(GDP)의 무려 20%를 창출하는 ‘국가 핵심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효과로 인구 800만명의 소국 이스라엘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의 나스닥 상장 업체를 보유하게 됐고, 프랑스와 독일 내 숫자를 합한 것만큼의 벤처캐피털을 유치했다. 나라 전체의 명운을 바꾸는 ‘연구 중심 대학’의 가치를 테크니온공대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인물’에 갇힌 국내 대학…폐쇄적 문화 극복해야






반면 국내 대학은 여전히 창업인 육성을 위한 실무교육에는 못 미치며 공전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한국의 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선두를 다툴 만큼 상위권이지만 전혀 다른 결과물이 연구의 출발점인 대학에서부터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입학 이후 전공을 선택하고 전공 간에도 자유롭게 경쟁하는 선진 유수 대학과는 달리 국내 대부분의 대학은 학과별 정원 조정부터 요원하다. 대학은 총 정원 내에서 학과별 정원을 조정할 수 있지만 해당 학과 교원·학생들의 반발로 공염불이 되기 일쑤다. 이 때문에 교육부가 지난해 첨단학과 인원 증설을 위해 연간 3만~4만명에 달하는 학교별 결손인원(제적·퇴학인원)을 활용하겠다는 고육지책을 내놓기도 했다.

교원들도 창업 환경 조성을 위해 학문과 이론·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하며 경쟁하는 테크니온공대와는 달리 일단 정년 계열로 임용되면 10여년 내에 무난히 정교수에 이르는 등 연구 및 혁신과는 동떨어져 있다. 테크니온공대 학생들이 입학과 동시에 창업가 정신, 창업 노하우, 사업화 가능한 창업기술 등에 끊임없이 노출되며 신기술 창출을 독려받는 반면 국내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한 고학점에만 목맬 뿐 갈수록 연구자의 길을 외면해 ‘텅 빈 대학원’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런 격차 속에 국내 대학은 여전히 대학원 중심의 연구창업을 위해 분투하는 수준이지만 테크니온공대는 지난해 민간에서만 18억달러(약 2조원)의 10년 투자펀드를 유치하며 미래기술 창업이 상식인 대학을 일궜다. 혁신을 통해 창출한 열린 교육 시스템의 중요성을 양국의 격차가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한 서울 주요 대학 교수는 “국내 대학은 ‘사회적 신분’을 얻는 역할로 입학이 어려울 뿐 졸업은 쉬운 구조”라며 “산학협력 교원마저 통상 저임금 비정년 계열로 모집해온 우리 대학이 실무교육의 장이 되려면 환골탈태 수준의 체질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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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성 없는 정부 지원…세계적 연구중심대학도 공염불

정부 지원 역시 ‘선택과 집중’을 외면해 투자 효율이 극히 떨어지는 등 세계적 연구 중심 대학 육성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입수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14년에서 2018년까지 5년간 총 410개 일반대학에 13조원을 지원했다. 1위인 서울대가 8,610억원을 지원받아 전체의 6.6%를 차지했을 뿐 2~3위인 연세대(2,500억원·1.9%)와 고려대(2,200억원·1.7%)의 지원액은 전체의 1%대로 연간 500억원도 넘지 못했다. 첨단기술 창출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요구되는 만큼 중국과학원에 집중 투자하는 중국 등 경쟁국들처럼 대학별 특화사업단 지정 등과 같이 선택과 집중을 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지역 균형론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울산과학기술원·광주과학기술원·대구경북과학기술원 등 정부 지원이 집중되는 과학기술특성화대학들이 서울대·고려대·성균관대 등 서울권 주요 대학을 2~4배나 앞선다. 하지만 주요 성과지표인 중도탈락 학생 비율은 크게는 배까지 차이 나 효율이 떨어지는 투자라는 지적이 나온다. KAIST를 제외한 과기특성화대학의 흡수통합 등이 꾸준히 거론되는 가운데서도 정부는 전남 나주에 한전공대를 또 짓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 대학의 글로벌 순위는 경쟁국과의 차이를 더욱 키우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집계한 국가경쟁력 순위는 지난해 63개국 중 28위였지만 대학 경쟁력은 55위로 바닥권을 면치 못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편수는 세계 12위였으나 2017년까지 5년간 SCI 논문 1편당 피인용 횟수는 32위에 그쳐 교육부가 “연구의 양적 성과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질적 성과는 미흡하다”는 자체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성과를 판별할 지표 역시 부족해 교육 당국은 연구비 부정시비를 막고자 질적 지표보다 양적 지표를 앞세우고, 대학은 기금 창출에 적합한 연구만 진행하는 등 비효율성이 만연하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연구비 실물영수증 첨부 관행을 없앤 것이 총장의 업적이 될 정도로 대학 역시 포지티브 규제(규정된 것만 허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네거티브 규제(규정된 것만 금지)로의 전환 속에 대학도 원천기술 등의 ‘가치 창출’로 교육의 역할을 달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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