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자율·소통 조직문화가 초격차 만든다"…총수들 권위를 놓다

[창간60주년 기획 -대한민국 경제 돌파구 초격차]

<4·끝>초격차의 성공방정식 -기업문화 혁신

창의성 중요한 4차산업혁명 시대

창업세대 '하면된다' 방식엔 한계

연공주의 탈피 수평적 문화 만들고

출퇴근시간·복장 등 자율도 강화

이재용·정의선·최태원·구광모 등

'젊은 리더십'으로 조직혁신 앞장




“회장님의 워라밸 점수는 몇 점인가요?” “제 워라밸은 꽝입니다.”

스타트업 대표와 직원 간 질의응답 같은 이 대화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평사원이 1년여 전 ‘행복토크’ 자리에서 나눈 격의 없는 대화다. 최 회장은 “성공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해지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며 행복경영 철학을 기반으로 ‘딥체인지(근원적 변화)’에 힘을 쏟고 있다.

권위주의의 상징이던 기업 총수를 비롯한 최고경영자(CEO)들이 바뀌고 있다. 창의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자율과 소통 등에 기반한 새로운 기업문화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감각을 익힌 젊은 총수들은 애플·구글·페이스북 등이 도입하고 있는 ‘실리콘밸리 문화’ 주입에 적극적이다.


기업문화 혁신은 ‘초격차’ 전략을 만드는 플랫폼이다. ‘하면 된다’는 기업문화로는 더 이상 5세대(G) 이동통신과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내는 비즈니스 환경에 적응할 수가 없다. 특히 의사표현이 확실한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와의 동행은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리더십이 필수충분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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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17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에서 ‘보이는 라디오’ 형식의 99차 행복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SK그룹을 비롯한 국내 주요 기업들은 구성원과의 소통 강화 등 기업문화 혁신을 통한 또다른 ‘초격차’에 나서고 있다.       /사진제공=SK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17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에서 ‘보이는 라디오’ 형식의 99차 행복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SK그룹을 비롯한 국내 주요 기업들은 구성원과의 소통 강화 등 기업문화 혁신을 통한 또다른 ‘초격차’에 나서고 있다. /사진제공=SK


이 같은 변화의 선두주자로 SK그룹이 꼽힌다. 최 회장은 지난 2016년 6월 확대경영회의에서 ‘딥체인지’를 언급한 후 매년 사회적 가치 추구 등 새로운 어젠다를 내세우며 기업문화를 확 바꾸고 있다. 고정된 업무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SK이노베이션 등 주요 계열사가 자율좌석제를 도입했고 임원 직급도 없앴다. 일부 그룹사는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월3일 수원사업장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한 뒤 활짝 웃으며 이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임직원 인스타그램 캡처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월3일 수원사업장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한 뒤 활짝 웃으며 이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임직원 인스타그램 캡처


삼성전자는 2016년 ‘경력개발 단계 직급체계’를 도입해 기존의 연공주의 중심 인사제도를 전문성을 중시하는 직무 및 역할 중심의 인사체계로 개편했다. 임직원 간 호칭은 ‘님’을 사용하며 직원들이 연간 휴가계획을 자유롭게 세울 수 있는 재충전 문화도 정착시켰다. 2015년에는 자율출퇴근제를 도입해 하루 4시간 이상, 1주일에 40시간 이상이라는 조건만 충족하면 자율적인 근무가 가능하도록 해 정보기술(IT) 기업에 걸맞은 실리콘밸리식 기업문화도 이식했다. 삼성 기업문화의 변화에는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에서 일명 ‘재드래곤’으로 불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6월 삼성물산 건설 부문 사옥의 구내식당을 찾아 직접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직원들과 점심을 했다. 특히 직원들과 함께 셀카를 찍는 등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미래 개척에 상생과 동행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10월22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대강당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직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10월22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대강당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직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흰색 와이셔츠 소매를 걷고 일했던 현대자동차 직원들은 요즘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는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수석부회장 체제 들어 조직문화 혁신과 가치공유를 목표로 빠르게 기업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의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품질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며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면 정 수석부회장은 조직문화 혁신을 통한 미래 흐름 대응으로 ‘글로벌 트렌드 세터’가 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9월부터 일반직 직원의 호칭을 ‘매니저’와 ‘책임매니저’ 등 2단계로 통합했으며 6단계로 구성된 직급 또한 4단계로 줄였다. 또 절대평가 도입 및 승진 연차 폐지로 능력 있는 직원이 빨리 승진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신입사원 공개채용 방식을 정기공채에서 상시공채로 전환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래차와 공유차 등 급박하게 바뀌는 산업환경에는 젊은 조직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를 통한 ‘뉴 LG’를 선언했다. 임직원의 업무습득능력 향상을 위한 챗봇(chatbot) 서비스 ‘엘지니’를 통해 IT 문화 이식을 강화했다. 그룹 신년인사도 동영상을 통해 전 세계에 전달됐다.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의 구 회장은 “고객의 마음으로 실천하자”고 강조했다.

다만 기업문화 혁신 또한 결국 ‘성과주의’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직원들은 물론 기업 총수들의 성과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아버지 세대의 성과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이 큰데다 저성장 시대를 극복할 해법까지 마련해야 하는 2·3·4세 경영인들로서는 앞선 세대와는 다른 경영철학 및 운용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업문화 개선에 더해 회사 실적이 안 좋아지면 오너 일가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책임경영’ 의지를 보여주는 식으로 조직원들의 마음을 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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