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보험상품별 손해율 15%P 차이에도..."인상률 맞춰라"

[악화일로 보험산업-<5>브레이크 없는 당국 보험료 통제]

상품·각사별 손해율 천차만별인데

당국 일괄지시에 요율 조정폭 통일

정부, 총선 앞두고 여론 눈치에

자보료 인상폭도 5→3%대로 낮춰

보험료 전면 자율화 구호에 그쳐




‘보험회사가 보험료를 매년 동일시점에 동일수준·동일폭으로 조정하면서 상품가격의 획일성을 조장하게 되고 소비자 선택권을 제약한다.’ ‘(이자율 규제가) 보험회사 스스로 결정해야 할 예정이율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해 가격 획일성을 초래하는 만큼 이를 폐지해 보험료가 자율적으로 산출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보험료 전면 자율화가 명문화된 2015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배포한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2015~2017)’에는 이런 문구가 등장한다. 보험사에 가격 결정 권한을 넘겨 업계의 가격 경쟁을 촉진시키고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로드맵 발표 직후 보험사들이 자유자재로 보험료를 조정하며 무한경쟁을 펼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그러나 4년여가 지난 지금 보험료 전면 자율화는 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비단 지난해 말 실손의료보험료 인상을 두고 업계와 당국이 벌인 촌극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12월 중순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보험 최고경영자(CEO)들과의 간담회를 앞두고 당국은 보험사에 ‘착한실손(신실손)의 보험료를 1%대로 내릴 것’을 가이드라인으로 줬다. 신실손은 2017년 4월부터 판매한 상품으로 자기부담금을 높이고 도수치료, 비급여주사제, 비급여 MRI 등 보험금 청구가 집중되는 담보를 특약으로 분류한 상품이다. 손해율이 구실손(2009년 10월 이전 판매)이나 표준화실손(2009년 10월~2017년 3월 판매)에 비해 낮은 만큼 가격을 낮춰 가입자에게 혜택을 돌려주라는 취지였다.

이에 보험사들은 지난해 12월27일까지 신실손 보험료를 1%가량 낮추는 대신 이달 1일자로 요율 조정이 이뤄지는 표준화실손과 오는 4월 조정하는 구실손의 평균 인상률이 최대 9.9%에 이르는 수준에서 요율 인상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30일 당국은 보험사에 신실손 인하 폭을 9%대로 키우고 표준화실손과 구실손의 요율 인상도 각각 9.9% 이내로 맞추라는 가이드라인을 다시 내렸다. 상품별·각사별로 손해율이 천차만별인데도 당국의 일괄지시에 따라 업계가 이틀 만에 일제히 평균 요율 조정폭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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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 따르면 보통 자기부담금이 아예 없는 구실손의 손해율은 표준화실손보다 15%포인트가량 높고, 표준화실손은 신실손보다 약 40%포인트 높게 나타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기준 구 실손의 손해율은 133.9%로 가장 높았고 표준화 실손은 119.6%, 신실손은 77%로 비교적 양호했다. 보험연구원이 집계한 올 상반기 신실손 위험손해율이 92.6%라는 점을 감안하면 구 실손 손해율은 140~150% 수준까지 치솟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물론 연말에는 이보다 손해율이 높아졌다. 그런데도 당국이 ‘가이드라인’ 형식을 빌려 손해율이 상이한 구실손과 표준화실손에 동일한 인상 폭을 강제한 것도 모자라 이미 적정 손해율 구간인 80% 수준을 크게 웃도는 신실손마저도 가격 인하를 압박한 것이다.

지난해 실손보험에서 사상 최대 영업 적자가 예상되지만 업계로서는 더 이상 당국과 힘겨루기를 할 여력이 없다. 자동차보험료 인상이라는 또 한 가지 시급한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불과 한 달 전 보험사들은 100% 안팎까지 치솟은 손해율을 반영, 5% 안팎 수준에서 자보료 인상을 추진했지만 음주운전 사고부담금을 높이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제도 변경 효과(1.2%)를 감안하라는 당국의 요구에 따라 인상률을 3%대로 낮췄다. 그러나 업계가 제출한 요율 검증을 진행 중인 보험개발원의 검증 결과 회신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업계가 계획했던 1월 인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업계 관계자는 “3%대 인상에 힘을 실어줬던 당국이 총선을 앞두고 1%대 인상으로 입장을 바꿨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귀띔했다.

문재인케어(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 논란으로 본격화된 당국의 전방위 보험료 통제는 4월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게 업계 평가다. 한 보험사 임원은 “어차피 업계가 자율적으로 가격을 정할 수 없으면 아예 처음부터 당국이 가격을 정해 통보해주는 게 낫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라며 “총선을 앞두고 여론 눈치만 보는 정부 탓에 실손보험과 자동차보험의 지속 가능성은 물론 보험사의 건전성도 훼손될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과잉 진료와 저금리, 경쟁 격화 등의 부정적인 영업환경에도 국내 손보사들은 운용 이익 극대화를 통해 실적에선 선방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의 시선이 싸늘한 것도 규제 불확실성 때문이다. 장효선 삼성증권 연구원은 “요율인상안이 기대치를 하회하면서 투자자들은 이를 보험업종의 규제 리스크 확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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