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강국 독일의 지난해 자동차 생산이 2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자동차 수요 하락의 여파로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미중 무역협상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이란 사태 등 각종 대외여건이 악화하고 있어 글로벌 자동차 시장 침체는 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는 지난해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와 폭스바겐·BMW 등을 포함한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독일에서 470만대를 생산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996년 이후 가장 낮은 생산량으로 지난해와 비교해서도 9% 감소한 수치다.
독일 자동차 생산량 감소는 국제수요 둔화에 따른 수출부진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내수시장은 5% 성장했지만 수출은 전년 대비 13% 하락한 350만대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수출부진의 원인을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에 따른 신흥국 시장 수요 감소와 유럽의 배기가스 기준 강화로 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리먼사태 당시에도 미국과 유럽·일본 시장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글로벌 시장은 4% 이상 축소됐지만 중국 등 신흥국 성장이 두드러지면서 하락폭을 줄였다”며 “하지만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인도가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의 여파로 경기가 급속히 침체하면서 이전보다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됐다”고 진단했다.
미국과 일본 등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 강국은 수출뿐 아니라 내수에서도 고전하며 더욱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이날 미국 빅3로 불리는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피아트크라이슬러(FCA)는 지난해 미국 내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2.3% 감소한 751만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빅3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 내 판매가 급감한 가운데 GM 등의 파업이 장기화하고 포드가 수요 감소로 세단형 차량 판매를 종료하는 등 내수시장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분석했다.
일본 역시 신차 내수시장에서 지난해 역주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일본자동차판매협회연합회와 전국경자동차협회연합회가 발표한 일본 내 신차판매 현황 자료에 따르면 경차를 포함한 신차의 일본 내수시장 총 판매대수는 지난해 519만5,216대로 전년 대비 1.5% 감소했다. 일본 내수시장의 신차 판매대수가 역성장한 것은 3년 만이다. 일본자동차판매협회연합회는 지난해 가을 잇따랐던 태풍과 호우 등 자연재해와 지난해 10월의 소비세 인상(8→10%), 올 상반기 출시되는 신차종에 대한 소비자의 대기심리가 판매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영국도 브렉시트의 불확실성에다 대기오염 규제 강화 등으로 자동차 판매 규모가 3년 연속 뒷걸음질했다. 영국 자동차산업협회(SMMT)는 지난해 영국 내에 등록된 신차는 모두 231만1,000대로 전년(236만7,000대) 대비 2.4%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자동차 시장의 침체 분위기는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무역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고 여기에 이란 사태 등 중동지역의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전반적인 소비심리가 살아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마이크 하웨스 SMMT 회장은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신차를 구매하기보다 기존 차량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WSJ는 “지난해 판매되지 못한 재고차량을 처리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이는 제조업체들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