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지난 8일(현지시간) 벌어진 민항기 추락사고의 원인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면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란 당국은 테러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격추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추락사고 전 이란의 보복공격을 받은 미국과 이번 사고로 수십여명의 자국민을 잃은 캐나다가 철저한 원인 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이번 사고가 외교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확한 사고원인이 밝혀지기 전 장기간 관련 국가 간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8일 오전 우크라이나항공(UIA) 보잉737 여객기가 이란 테헤란 이맘호메이니 국제공항을 이륙한 직후 추락했다. 엔진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여객기가 추락했다는 이란 당국의 초기 조사 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를 반박하는 여러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위성자료에 따르면 비행기의 이륙과 상승 과정에서 특이한 점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륙 직후 사고 당시의 영상을 접한 일부 전문가들도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연방항공청(FAA) 사고조사팀을 이끌었던 제프리 구체티의 말을 인용해 항공기록과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전형적인 엔진 고장이나 화재사고가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의도적으로 불을 붙이거나 폭발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비행기가 짧은 시간에 불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란이 보유한 러시아제 미사일에 의한 피격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 알렉세이 다닐로프는 “(사고 원인에 대한) 주요 가설 가운데 토르를 포함한 지대공미사일에 의한 피격도 있다”면서 “사고현장 부근에서 (해당) 미사일 잔해가 발견됐다는 정보가 인터넷에 올라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테헤란으로 간 우크라이나 국가조사위원회 전문가들이 사고현장 시찰 문제를 이란 측과 조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가 테러에 따른 것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피터 고엘즈 전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이사는 NYT에 “사고 원인으로 테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는 여러 의혹을 일축했다. 모하마드 에슬라미 이란 도로·도시개발장관은 9일 “테러분자의 공격, 폭발물 또는 격추라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라며 “기계적 결함이 사고 원인”이라고 단정했다. 격추라면 여객기가 공중에서 폭발했어야 하는데 불이 먼저 붙은 뒤 지면에 떨어지면서 폭발했다는 것이다.
이란 현지언론은 이란의 이라크 내 미군기지 미사일 공격 후 5시간 만에 항공기가 추락했지만 미사일 발사 지점인 서부 케르만샤와 추락지점인 테헤란은 수백㎞ 떨어졌다는 점에서 격추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란인 승객이 대다수인데 이란군이 격추해 얻는 실익이 없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시각이다. 희생자 176명 가운데 캐나다 국적자가 63명이었지만 이들은 대부분 이란 국적도 함께 가진 이란계였다.
이란 당국은 블랙박스 2개를 회수하는 등 원인 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블랙박스를 미국 측에 넘기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캐나다는 철저한 조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8일 성명을 내고 “미국은 이 사건을 면밀히 추적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