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엘리자베스 2세(93) 여왕이 손자 해리(35) 왕손과 그의 부인인 메건 마클 왕손빈(38)의 독립선언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간 해리 왕손 부부가 왕실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해왔고 윌리엄 왕세손 부부와의 불화설까지 불거지자 왕실의 위기를 봉합하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앞으로 해리 왕손 부부의 왕실 내 역할, 재정적 독립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여왕은 이날 잉글랜드 동부 노퍽에 있는 샌드링엄 영지에서 긴급 가족회의를 열어 해리 왕손 부부 문제를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여왕 외에 여왕의 장남인 찰스 왕세자, 찰스 왕세자의 아들인 윌리엄(37) 왕세손과 해리 왕손이 참석했다. 여왕은 90여분간 이어진 회의 후 비공개 성명을 통해 “내 가족과 나는 젊은 가족으로서 새로운 삶을 창조하려는 해리와 메건의 바람을 전적으로 지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그들이 ‘로열패밀리’의 일원으로 늘 함께하기를 선호했지만 여전히 가족의 가치 있는 부분으로 남은 가운데 좀 더 독립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그들의 희망을 존중하고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여왕이 해리 부부의 독립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이들의 재정적 독립 등 해결돼야 할 과제가 많다. 여왕은 “여전히 우리 가족이 풀어야 할 복잡한 문제가 있으며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면서 “나는 최종 결론을 빠르게 내릴 것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여왕의 성명 내용은 보통 의전에 엄격한 편이지만 이날 여왕은 해리 왕손 부부를 왕실의 공식 칭호인 서식스 공작과 서식스 공작부인보다 ‘내 손자와 그의 가족’ ‘해리와 메건’으로 불렀다. BBC는 여왕의 발언은 놀랍도록 솔직하고 비공식적이며 개인적인 편이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리 왕손 부부를 배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두 사람 모두 최근 몇 달 동안 왕실생활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으며, 특히 해리 왕손은 아내인 메건 마클 왕손빈이 그의 어머니 다이애나 전 왕세자빈의 죽음과 같은 일을 겪을까 두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실 관련 책을 출판한 작가 페니 주노는 BBC에 “이번 성명은 할머니가 가족에게 말하는 느낌을 준다”며 “(이번 성명 발표로) 해리 부부의 압박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해리 왕손과 메건 마클 왕손빈은 지난 8일 내놓은 성명에서 왕실 고위구성원(senior royal family)에서 물러나는 한편 재정적으로 독립하겠다고 밝혔다. 해리 왕손 부부는 이 같은 결정을 여왕이나 아버지인 찰스 왕세자와 사전에 상의하지 않고 인스타그램과 자신들의 웹사이트를 통해 발표했다. 더욱이 이번 독립선언이 형인 윌리엄 왕세손 부부와의 불화 때문이라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왕실 내 위기감은 커졌다. 그러나 여왕의 성명 발표 직전 윌리엄 왕세손은 자신이 해리 왕손 부부를 ‘왕따시켰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해리 왕손과 공동명의로 발표한 성명에서 불화설을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