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바뀐 새 규정에 따라 올해 새로 뽑아야 할 사외이사가 최소 566개사에 718명이나 된다. 12월 결산 상장사의 60%가 사외이사의 절반 이상을 교체해야 한다. 상장사는 사외이사 신규 선임안을 주총 2주 전 안건에 포함해 공시해야 하는데 국무회의 등을 거쳐 다음달 초 시행되는 점을 고려하면 3월 주총 기업들은 한 달여 만에 영입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기업들이 사외이사 대란을 우려하는 것도 엄살이 아니다.
물론 현행 사외이사 제도는 결함이 있다. 사외이사가 경영진의 거수기 역할에 머무르고 과도하게 오래 해 기업과 유착관계가 생기는 일도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사외이사 임기까지 정부가 통제하는 것은 민간기업을 국영기업과 동일시하는 처사다. 경영 투명성을 이유로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헌법 제119조의 정신까지 무시하는 것은 전형적인 교각살우다. 이런 일은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뿐더러 입법 사례로 예시된 영국조차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
정부도 이런 부작용을 알기에 유예 기간을 두려 했던 것인데 당정협의 과정에서 여당 측이 올해 강행하자고 밀어붙였다고 하니 정치적 배경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여당으로서는 총선을 앞두고 공천 탈락자의 불만을 달래는 데 이만한 자리도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의 물꼬가 열린 상황에서 사외이사까지 정부와 여당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꽂아 넣으면 기업이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신임 총리가 취임 일성으로 밝힌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면 이번 조치는 지금이라도 접는 것이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