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최근 정부에서 내놓은 인공지능(AI) 등 첨단학과 신·증설안에 대해 “제적·퇴학인원인 ‘결손인원’을 수도권 대학 학과 신·증설에 활용하도록 한 정부 방안은 실효성이 없고 제대로 작용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지난 15일 서울경제와 만나 “첨단학과를 만든다 해도 편입생 정원을 활용하는 것이기에 몇 년 뒤에는 다시 정원을 줄여야 하는 구조”라며 “(편입생에도 영향을 주는 등) 학과의 동의를 얻기도 어렵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수도권 주요대학의 모집정원이 묶여 있어 4차 혁명시대의 인재 양성이 어렵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전체 대학 정원은 현행 수준을 유지하되 비인기 학과 등의 결손인원을 활용해 10년간 8만명의 첨단학과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게 김 총장의 설명이다.
퇴임을 불과 보름여 앞둔 김 총장은 대학 등록금, AI 교육, 구조개혁 등 당면한 대학 위기에 여전히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국내 ‘사회 연결망 이론(Social Network Theory)’의 최고 권위자이자 대표적인 사회학자인 그는 1월 말 총장 임기를 끝으로 정든 강단을 떠난다. 그는 이러한 소회를 “하루는 정말 길었는데 4년은 짧았다”는 말로 대신하며 실체적 해결 방안인 ‘하우투(HOW TO)’ 찾기에 여전히 골몰하는 학자의 속내를 드러냈다.
김 총장은 부실대학 정리에 대해서도 정부가 소극적이라고 말을 이었다. 김 총장은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숫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정부는 (정원 조정을 대학 자율에 맡기는 등) 대학을 보호하려고 너무 연명시키는 것 같다”며 등록금 인상 대신 정부 재정지원을 늘리겠다는 정부 구상이 현실화되려면 ‘선택과 집중’을 바탕으로 한 대학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12년째 동결된 대학 등록금에 대해서도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월급 역시 12년째 묶이며 교수들이 ‘반값 임금’을 받게 됐다”면서 “등록금 규제로 재원이 고갈돼 우수인력 유치가 갈수록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립대 위주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대학과 사립대 위주인 한국 대학을 단순 비교해 우리 등록금이 지나치게 높다고 말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우리 대학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교육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자율적 혁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개원하는 연세대 AI대학원 역시 이런 고민 속에서 탄생했다. 견고한 학과별 정원의 벽을 넘기 위해 그는 각과의 동의를 얻어 대학원 정원의 10%를 개별학과가 아닌 대학본부 관할로 두고 학생을 모집했다. 교원들도 기존 학과와 복수 발령 형태로 채용해 학내 갈등을 방지했다.
연세대의 교육 혁신과 기술 창업도 이런 가운데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연세대 교수 창업회사들은 주식 처분 등으로 거둔 57억원의 수익 중 20%를 학과와 대학에 돌려줬다. 학교 일을 하지 않고 자기 사업만 한다며 은근히 꺼리는 국내 대학의 기술창업 풍토를 극복하기 위해 순수익을 학과에 돌려주는 방안을 고안하자 창업 독려 분위기가 살아난 것이다. 300만원의 기본 지원금을 주는 교육 혁신을 위한 ‘사회 참여형’ 수업들도 확대 기조다. 남태평양 섬나라 니우에 정부와 관광개발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이끌어낸 학생들은 컨설팅회사에 스카우트됐다. 사이판 주정부와 한국 젊은이들이 방문하지 않는 이유를 연구해 인터넷이 느리기 때문이라는 답을 얻은 뒤 ‘인터넷 해방’을 관광 슬로건으로 제시했던 수업 팀의 해당 학생들은 이후 구글에 입사했다. 재래시장 도시계획 재생사업 방안을 연구한 팀은 2억원의 지자체 지원을 얻기도 했다.
학생 창업을 독려하기 위한 연세대 고등교육혁신원도 163개의 혁신팀인 ‘워크스테이션’을 선발해 총 3억원의 지원금을 부여하며 기술 창업 등을 이끌었다. 프로그램 언어 파이썬을 배우던 1학년 학생들이 시각장애인의 지팡이에 카메라 센서를 단 뒤 영상이미지를 휴대폰으로 전송해 장애물을 인지하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학 협력체인 ‘유니버시티 글로벌 컴팩트(UGC)’도 연세대 학생이 주축이 돼 유엔과 함께 출범하며 총 19개 대학이 서명하는 등 사회 변화를 이끌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단연 돋보였던 것은 문과적 상상력이었다. 김 총장은 “문과의 위기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4차 산업혁명 자체가 산업이 아닌 문명이 기술과 합일하는 근본 변화”라며 “코딩언어도 모듈화되며 갈수록 접근이 쉬워지는 등 상상력과 창의력이 시대 선도를 위한 필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과생’인 그 역시 구글의 성공에 주효한 검색어 기반 관련 특허를 그보다 7년 앞서 낸 경력이 있다. 네트워크 트래픽을 활용해 중심에 있는 것을 먼저 보여주고 광고비를 매기는 형태의 알고리즘 특허로 사회적 네크워킹 전문가다운 결과였다.
퇴임 이후 그는 이러한 사회학자로서의 사회 연구를 강단이 아닌 ‘현장’에서 이루기 위해 명예교수직을 고사하고 ‘재야’로 돌아간다. 그는 최근 암흑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분석으로 천문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영욱 연세대 교수팀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딥 러닝 등 최첨단 과학 발전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 사회학자로서 분석하는 일에 흥미가 많다”며 “은퇴 뒤 사이언스 라이터(Science writer)로서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