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검찰인사 독립’ 공약 文, “인사권은 내 것” 돌변?.. ‘마음의 빚’ 조국 영향인가 [서초동 야단법석]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자랜드에 전시된 TV에서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이 생중계되고 있다./연합뉴스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자랜드에 전시된 TV에서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이 생중계되고 있다./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조국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수사권은 검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인사권은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권이 존중되어야 하듯이 장관과 대통령 인사권도 존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문재인 대통령, 1월14일 신년 기자회견)

“정치 권력이 자신의 정치적 목표와 이익을 위해 검찰을 수족처럼 부려선 안 되지만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에게는 헌법과 법률이 부과하는 인사권이 있으며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정당하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 책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중)


‘윤석열 사단 대학살’ 논란을 빚은 1·8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한 데 대해 이전과 입장이 달라진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 검찰 인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 변화는 인사권 행사를 통한 검찰 통제를 주창하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2017년4월 후보자 시절 내놓은 대선 공약집에서 ‘검찰 인사 중립성, 독립성 확보‘를 약속했다. 구체적으로는 독립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총장추천위)를 구성해 검찰총장 임명에 있어 권력 개입을 차단한다고 했다. 또 총장추천위와 검찰인사위원회(검찰인사위)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보다 자세한 ‘검찰개혁안’은 이전 대선인 2012년12월에 발표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대통령 및 청와대가 검찰 수사와 인사에 관여했던 악습을 완전히 뜯어 고치겠습니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에게 주어졌던 검찰총장 임명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총장추천위에 검찰 내부의 의견이 수렴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시민단체 등 외부인사가 과반수 이상 참여하게 한다고 했다. 검찰인사위는 외부 인사가 과반수 이상 참여하는 형태로 확대 개편하고 검사장급 인사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공약한 검찰인사 제도 개선, 감감무소식
또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취임사에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며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고 밝혀 이같은 검찰인사 개혁 조치를 해나갈 것을 시사했다. 2017년8월 내놓은 ‘100대 과제’에서는 공약 사항인 총장추천위와 검찰인사위의 중립성·독립성 확보를 위한 제도 정비를 당해부터 들어가겠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임기 절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총장추천위와 검찰인사위 제도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기존 총장추천위 구조로 임명됐으며 검찰 고위 간부 인사도 지난 1월8일까지 세 차례 단행된 상태다. 특히 100대 과제 발표 이후에는 인사 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 신년 기자회견에서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못박은 것이다.



대통령 입장 변화, 조국 수사 이후?
문 대통령이 이처럼 인사권을 적극 행사하겠단 입장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8월27일 조 전 장관의 일가족 비리 수사가 본격화된 이후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 전 장관의 법무부 장관 임명 이후 이뤄진 지난해 9월30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은 “권력기관일수록 더 강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수단으로는 인사·예산·감찰이 거론되는 만큼 인사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났다는 해석이 나왔다.


또 조 전 장관의 사퇴 일주일 뒤인 지난해 10월22일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는 “검찰에 대한 실효성 있는 감찰과 공평한 인사 등 검찰이 더 이상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감찰과 인사를 검찰개혁의 도구로 삼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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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인사권 행사는 정당하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변화는 조 전 장관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조 전 장관은 교수 시절부터 검찰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인사권을 행사해야 함을 강조해왔다. 2010년11월 출간된 ‘진보집권플랜’에서는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을 통하여 검찰에 대한 정당한 인사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어떤 자리에 앉히고 어떤 사람을 승진시키는가에 따라 공무원 조직은 달라집니다.”고 했다.

또 책의 다른 부분에서는 “법무부 장관에게는 법안제출권이 있습니다. 검찰을 쪼갠다고 하면 검사들이 반발하겠죠. 그러면 ”너 나가라“고 하면 되는 거예요. 검찰을 쪼개는가 마는가의 문제는 검찰의 권한이 전혀 아니거든요.”라고도 했다. 정부 정책에 반발하는 검사들은 인사권으로 응징하면 된다는 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2012년7월 출간된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에서도 “정치 권력이 자신의 정치적 목표와 이익을 위해 검찰을 수족처럼 부려선 안 되지만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에게는 헌법과 법률이 부과하는 인사권이 있으며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정당하다”며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지난해 9월9일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도 “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적절한 인사권 행사, 검찰 개혁의 법제화, 국민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통제 등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감독기능을 실질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같은 입장을 유지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조 전 장관의 일가족 수사를 계기로 조 전 장관의 평소 신념이던 인사권을 통한 검찰 통제론을 차용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 전 장관의) 유무죄는 수사나 재판 과정을 통해서 밝혀질 일이지만 그 결과와 무관하게 이미 조국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고초, 그것 만으로도 저는 아주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3일 취임사에서 “법무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탈(脫)검찰과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속도를 내겠다”며 검찰 통제에 방점을 찍었다.

중간 간부도 대폭 교체하나
이러한 문 대통령의 인사 기조로 미루어 볼 때 다음주 검찰 중간 간부 인사가 ‘윤석열 사단 대학살 시즌2’로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이같은 인사가 단행되면 검사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정희도 대검찰청 감찰2과장은 대검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특정사건 관련 수사담당자를 찍어내는 등의 불공정한 인사’는 ‘정치검사 시즌2’를 양산하고 시계바늘을 되돌려 다시 검찰을 ‘정권의 시녀’로 만들 수 있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의 분위기도 심상찮다. 이번 정부의 검찰개혁 핵심인 검경수사권 조정을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규정하며 사표를 던진 김웅 법무연수원 교수의 이프로스 글에는 검찰 역사상 최다인 600여개의 댓글이 달린 상태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 인사의 중립성·독립성을 보장하는 제도 개선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 통과 이후로 미뤘으리란 짐작이 있었는데 작금의 상황을 보면 인사 제도 개선은 아예 생각이 없는 듯하다”며 “정권을 잡고 나니 보수 정부와 똑같이 검찰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이용한다는 평가를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조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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