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해 11월에 이어 올해 첫 기준금리 결정회의에서도 1.25%의 금리를 동결했습니다. 한은은 지난해 불황이었던 국내 경기가 소폭 나아지는 움직임을 보였다며 금리 동결의 배경을 밝혔는데요. 경기가 침체 됐을 때 금리를 낮춰 시중에 돈이 돌게 하면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당장 금리를 인하하는 것보다 지켜보겠다는 입장인건데요.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 “수출과 설비투자 부진이 점차 개선되고 소비 증가세도 완만하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금리를 유지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미·중 간 무역분쟁의 향방이나 중동 지역 긴장 고조 등 국내 경제를 둘러싼 대외 환경과 경기 회복세, 금융안정 상황을 지켜보면서 금리 조정을 고려하겠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올해 상반기 중 금리 결정 회의는 2월27일과 4월9일, 5월28일 세 차례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상반기 내에는 금리 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은데요. 어떤 이유인지 살펴봤습니다.
◇‘투기와의 전쟁’ 선포한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
가장 먼저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부동산 대책을 끝까지 내놓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정부가 주택가격 안정에 사활을 걸고 강도 높은 대출 규제를 내놓고 있는 상황에 한은이 금리를 추가 인하하기에는 부담이 큰 상황입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통화 유동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중·장기 금리도 하락하게 됩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예금금리가 낮아지면 가계 경제주체들은 돈을 은행에 넣어 놓을 유인이 줄어듭니다. 자연스레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게 됩니다. 또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가계 등의 가계 주체들은 대출금에 대한 차입비용이 낮아져 대출을 많이 발생시켜 돈을 보유하고 있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우리나라는 가계부채의 대부분이 부동산 관련 자금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결국 부동산 시장 과열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죠.
이 총재는 역대 최저 금리로 인해 시중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 집값이 상승했다는 지적에 대해 “낮은 금리가 가계의 차입비용을 낮춰 주택수요와 가격을 높인 것은 사실”이라며 “완화적 통화기조를 유지하되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를 고려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완화적 통화기조 라는 말은 시장에 돈이 도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겠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시장에 있는 돈을 예금 등으로 흡수해 돈이 풀려 있는 것을 막는 경우에는 긴축적 통화기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은이 통화정책운용에 있어 전체적인 거시경제 흐름을 종합적으로 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화 추가 대책을 속속 내놓는 만큼 이와 관련한 한은의 정책 공조에 관심이 쏠립니다. 이 총재가 완화적 통화정책을 이어가겠다며 추가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으나 적어도 올해 상반기 중 금리 인하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중 간 분쟁과 미·이란 간 갈등 등 대외 리스크 여전
미국과 중국이 1년 넘게 이어온 무역갈등이 지난 15일 1차 합의문에 서명함으로써 일단락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해지고 있고 언제 또 미국과 중국이 무역과 관련해 등을 돌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인데요.
그동안 수출로 경제성장률을 이끌어왔던 우리나라에는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미·중 간 갈등으로 인해 전세계 교역이 경직되고 기업들의 투자심리도 위축된 탓입니다. 특히 중국은 우리나라의 수출 비중에서 2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국가입니다. 미·중 간 무역분쟁으로 중국의 경기도 부진하고 중동·유럽 등 다른 국가들에 대한 국내 수출이 줄어든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이달 초에는 미국이 이란의 군부 실세를 드론으로 공격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됐습니다. 이란은 곧바로 이라크 내 미군기지에 보복성의 미사일 공격을 단행했습니다. 이후 전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주춤해졌습니다. 다만 미국이 올해에도 이란에 대해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세계에 미칠 영향은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국제금융연구원이 해외 보고서들을 종합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 간의 갈등이 미·중 무역분쟁만큼이나 전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성장률이 0.3%p 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은 또 국제 유가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중동 산유국인 이란이 미국과 전쟁을 할 경우 석유 공급량이 줄어들어 국제 유가 폭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은은 이와 같은 여러 대외 리스크를 계속 주시하며 통화정책 결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경제상황이 지난해보다 나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100%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어서 한은도 상반기까지는 금리를 조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금통위 위원 4명, 임기 만료로 오는 4월 교체 가능성 有
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일부 위원들의 임기가 4월에 만료되는 점도 하나의 변수입니다. 금통위원 7명 중 4명은 오는 4월20일을 끝으로 임기를 마칩니다. 고승범·신인석·이일형·조동철 금통위원이 임기만료 대상입니다. 당연직인 이주열 한은 총재와 윤면식 부총재를 포함해 임지원 금통위원만 남고 과반이 바뀌는 셈입니다.
임기만료 대상인 4명의 위원들은 앞으로 2월, 4월 각 두 차례의 금리결정 회의에 참여하게 됩니다. 시장에서는 이들이 물러나기 전에 한 차례 금리를 인하하지 않겠냐는 시각도 있지만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발표가 4월23일이라는 점은 동결 기조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성장률이 나오기 전에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부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금통위원 4명이 모두 새 위원으로 교체되면 5월에 열리는 금리 결정회의에서는 아직 적응하지 못한 신임 금통위원들이 경제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탓에 금리 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다만 금통위원의 임기는 연장될 수 있으므로 4명의 임기가 끝나더라도 연임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울러 금통위원의 무더기 교체를 두고 그동안 우려하는 시각이 많아 모두 바뀌진 않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옵니다.
4월에 예정된 총선도 또다른 변수입니다. 한은이 총선 전에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부양에 힘을 보탤 가능성도 점쳐집니다. 하지만 이 역시 1분기 중 확고한 경기부진 확인이 될 경우에 가능한 시나리오여서 올해 상반기에는 금리가 동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