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80는 제네시스에는 첫 프리미엄 스포츠유틸리차량(SUV)이지만 한국 자동차 역사에 큰 도약으로 기록될 겁니다.”
이상엽 현대자동차 디자인센터장은 닐 암스트롱의 “한 사람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GV80’ 출시의 ‘감격’을 이렇게 설명했다. 반면 일반 대중에게 GV80는 ‘오래된 신인’이다. 지난 2017년 콘셉트카를 선보인 지 3년여가 흐른데다가 각종 스파이샷도 다수 유출돼 신선함이 다소 떨어졌기 때문. 맞다. 외관은 낯익다. 하지만 출시 첫날 기자가 타 본 성능은 새로움 자체였다.
지난 15일 GV80를 타고 일산 킨텍스에서 인천 송도 경원재 앰버서더 호텔까지 왕복 120㎞를 주행했다. GV80의 첫인상은 ‘G90’의 SUV 버전이라는 느낌이었다. GV80 전면부 디자인인 방패 모양의 대형 크레스트 그릴과 좌우 각 2개씩 총 4개의 쿼드램프, 제네시스의 상징인 G-매트릭스(사선형 디자인)는 G90의 특징과 똑 닮았다. 유출 사진 속 GV80는 차체가 굼뜨게 보였지만 실물은 예상보다 날렵했다. 일(一)자형의 날렵한 LED 쿼드램프와 측면을 가로지르는 두 줄의 캐릭터 라인, 쿠페처럼 뚝 떨어지는 루프라인은 우아하면서도 스포티한 감성을 느끼게 했다. 제네시스 디자이너는 “여백의 미”라고 설명했지만 실내 인테리어는 외관에 비해 심심했다. 옆으로 길게 뻗은 실내 구성은 언뜻 앞서 출시된 신형 그랜저를 떠올리게 했다. 다만 질감은 빛났다. 핸들, 시트, 센터 콘솔 위 다이얼 방식의 변속기 등 고급 소재의 질감이 잠들어있던 촉각을 일깨웠다.
시동을 걸고 본격적으로 달렸다. 우선 가속능력을 확인했다. GV80의 심장은 새로 개발한 3ℓ 직렬 6기통 디젤엔진이다. 디젤 엔진 특유의 진동은 실내로 거의 전달되지 않았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니 엔진에서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독일제 디젤 모델에서 듣던 가슴 뛰는 엔진음이었다. 순식간에 속도계가 시속 150㎞를 가리켰다. 또 시속 130㎞를 넘어가면서부터 시트 양옆이 자동으로 조여져 한층 안정적으로 고속 주행을 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조향 성능과 서스펜션을 시험해봤다.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핸들링 감각이었다. 운전자가 생각하는 딱 그만큼 정확히 회전했다.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차선을 변경하고 고속에서 코너링을 하는데도 차체가 단단하게 받쳐줬다. 현대·기아차 SUV 중 가장 롤링(차량이 좌우로 흔들리는 현상)이 잘 잡혀 있었다. 제동능력도 우수했다. 앞차와 간격이 가까워져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밀리는 느낌은 찾을 수 없었다.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 정확히 반응하는 모습에 독일 차 같은 기본기가 전해졌다.
GV80에 탑재된 첨단 기능에 관심을 돌렸다. 세계 최초로 ‘능동형 노면소음 저감기술(RANC)’을 적용한 GV80는 현대·기아차의 앞선 SUV보다 확실히 실내 정숙성이 뛰어났다. 소음을 줄이는 음파를 발생시켜 소음이 안 들리는 것처럼 만드는 노이즈 캔슬링 기술 덕분이다. 업그레이드된 자율주행 성능은 만족스러웠다. 기존에는 차량 전면 레이더 한개와 카메라 한개 만으로 반자율주행 기능을 선보였지만, GV80는 레이더가 차량 앞뒤 좌우 범퍼에 부착돼 총 5개로 늘어나 훨씬 스마트해졌다. 고속구간에서 반자율주행 중 옆 차선에서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을 미리 인지하고 속도를 줄였던 것. 기존에는 차량이 끼어든 후에야 반자율주행 기능이 이를 알아차려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다만 방향 지시등 조작만으로 차선을 변경하기는 수월치 않았다. 작동조건이 까다로워 수차례 방향 지시등을 켰지만 차선을 바꾸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옆 차선 전후방 100m에 차량이 없는 경우에만 이 기능이 발휘된다. 아쉽게도 세계 최초로 적용된 운전 스타일 연동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ML) 기능은 체험하지 못했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운전자의 주행 습관에 맞춰 반자율주행을 하기 때문에 몇 시간 시승만으로는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GV80의 가격은 6,580만원부터 시작해 풀옵션은 8,970만원에 달한다. 경쟁 차종으로 꼽히는 BMW의 ‘X5’가 1억원대, 벤츠의 ‘GLE’가 9,000만원대, 볼보의 ‘XC90’가 8,000만원대에 시작된다. 수입차들의 하위 등급만 놓고 본다면 GV80의 가격 경쟁력은 충분해 보인다. 출시 첫날 연간 국내 판매 목표 2만4,000여대의 절반을 넘는 1만5,000여대가 계약된 것만 봐도 상품성은 충분히 입증돼 보인다. GV80이 새로 써 나갈 국내 프리미엄 SUV의 새 역사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