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상황에서도 이어졌던 은행 정기예금 증가세가 11분기 만에 꺾였다. 국내외 경기 불확실성으로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지면서 시중 부동자금이 10분기 연속 은행 정기예금으로 몰렸던 점을 고려하면 갑작스러운 분위기 반전이다. 일각에서는 ‘머니무브’의 전조현상이라며 위험자산으로 자금이동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659조6,853억원으로 직전 분기보다 1.14%(7조5,803억원) 감소했다.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지난 2017년 2·4분기 이후 처음이다. 정기예금 잔액은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인 2009년 3·4분기부터 13분기 연속 늘어난 후 다시 최장 기록 경신을 앞두고 있었지만 10분기 연속 증가에 만족해야 했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만 정기예금 잔액은 25조344억원이나 감소했다.
선진국 증시 반등에도 좀처럼 오르지 않았던 국내 주식이 호조세로 돌아선 점은 특히 머니무브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 달 사이 코스피지수는 7.58% 상승했고 올해 들어서만 2.40%가량 상승해 아시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김형리 NH농협은행 All100 자문센터 팀장은 “미중 갈등 완화가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연초에 비해서도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전망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 만큼 코스피지수에 연동되는 인덱스펀드 투자와 대형주 중심의 주식 비중 확대를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마다 신예대율에 여유가 생긴 점도 자금흐름의 변화를 촉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예대율은 예수금 대비 대출금 평균잔액의 비중으로 은행의 건전성을 확인하는 지표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신예대율 기준을 맞추는 데 비상이 걸렸던 은행들은 지난해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에도 예금금리 인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예금금리 인하로 예금잔액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선제적인 수신액 확보에 성공한 만큼 올해부터는 예금금리 인하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우리은행이 이달 2일 정기예금 금리를 0.1%포인트 인하한 데 이어 신한·국민·KEB하나은행 등도 예금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NH농협은행의 경우 지난달 초 이미 예금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다만 중동 정세 불안과 미중 무역갈등 등 대외변수에 따라 안전자산 선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현섭 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PB팀장은 “주식 등 위험자산으로 자금흐름 반전이 감지되고 있지만 장기적인 흐름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연말·연초 기업경영 전략과 자금운용 전환 등으로 인해 일시에 기업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예금잔액이 대폭 감소했지만 개인 자금의 감소 폭은 상대적으로 적어 머니무브를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