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 폐렴’ 발병 사례가 확산되면서 모처럼 상승 랠리를 펼치는 국내 증시에 찬물을 끼얹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5~6년 단위로 반복되는 ‘감염병 리스크’가 국내 증시의 발목을 잡았던 경우가 많은 데 따른 트라우마인 셈이다. 특히 이번 폐렴의 경우 발병지가 한국과 가까운 중국이라는 점에서 확산된다면 17년 전 국내 경제성장률까지 끌어내렸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이상으로 충격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000년대 이후 코스피지수가 질병 확산의 영향으로 조정을 받았던 경우는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등 세 차례다. 사스의 경우 2002년 12월 중국에서 발생한 후 2003년 6월 세계보건기구(WHO)가 베이징 여행 금지 권고를 철회할 때까지 코스피지수가 730선에서 510선까지 30% 가까이 하락했다. 반면 2009년 신종플루와 2015년 메르스 발병 시기에는 코스피지수가 각각 최대 5%, 14%대 하락률을 보여 상대적으로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글로벌 바이러스 리스크는 증시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사스의 경우 2002년 4·4분기 1.1%였던 실질 경제성장률이 이듬해 1·4분기에는 마이너스(-0.7%)를 기록했다. 또 신종플루가 발생한데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와 맞물려 실제 경제성장률은 2009년 3·4분기 3.0%에서 4·4분기 0.7%까지 급감했다.
문제는 중국 우한 폐렴이 확산될 경우 우리 증시가 신종플루와 메르스가 아닌 사스 발병 당시와 비슷한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신종플루와 메르스의 경우 국내 감염자도 발생했지만 발병 지역이 주로 중동과 북중미 일부였던 반면 사스는 지리적으로 근접한 중국에서 발병했기 때문에 국내 전파 가능성이 더 컸다. 아울러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 경제가 폐렴 확산으로 휘청거릴 경우 입을 수 있는 타격도 중동 등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는 중국의 경제 규모 등을 고려하면 사스 당시보다 더 큰 충격이 국내 증시에 전해질 것으로 예상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4.3%에서 지난해 16.3%로 네 배 가까이 늘었으며 세계 교역 비중도 12%를 차지하고 있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책임연구원은 “중국 폐렴이 조기 방역에 실패해 춘제 이후 확산될 경우 실물경제 및 금융시장의 충격은 사스 때보다 클 수 있다”며 “중국 폐렴에 따른 충격이 사스와 유사하다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네 배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미 글로벌 금융시장도 ‘우한 폐렴’ 확산 우려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21일 뉴욕 증시는 이에 대한 우려감으로 다우존스산업지수가 0.52%, 나스닥지수 0.19%, S&P500지수는 0.27% 하락했다. 중국 주식 상장지수펀드도 3% 이상 급락했다.
하지만 증시전문가들은 아직 확산 여부가 미지수인 만큼 시장에 미리 공포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고비는 24일부터 시작되는 중국 춘제 연휴다. 대규모 이동이 예상되는 춘제 이후 확산 양상이 진정된다면 증시는 단기 조정 정도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임혜윤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춘제 이후 2~3월 확산 여부에 따라 우한 폐렴 사태가 일시적 변수가 될지, 성장 둔화가 현실화될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다만 확산되더라도 과거 ‘바이러스 리스크’에 증시가 영향을 받은 기간이 3~4개월 정도였으며 이후 이전 수준 이상의 회복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지나친 공포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조언이다. 실제로 사스가 진정 상태에 돌입한 2003년 6월 이후 코스피지수는 빠르게 회복해 그해 말에는 810.71포인트까지 올랐으며 세계 주식시장은 2003년 상반기에만 10% 이상 하락했지만 연말에는 31.6% 상승으로 마무리됐다.
실제 이날 코스피지수는 ‘우한 폐렴’ 확산 우려에도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목표치였던 2%를 달성했다는 소식에 전 거래일보다 1.23%(27.56포인트) 상승한 2,267.25를 기록하며 장을 마쳤다. 진원생명과학(011000)이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강세를 보였지만 제이준코스메틱(025620)(-4.0%), 한국화장품(123690)(-3.64%), 하나투어(039130)(-1.54%) 등 중국 소비재주는 약세를 나타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단기적인 이벤트보다는 추세에 집중해야 한다”며 “국내 기업들의 수출, 이익 개선의 방향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