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출신의 김두식 경북대 교수가 쓴 책 ‘헌법의 풍경’을 읽은 적이 있다. 지난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이 책을 탐독한 뒤 주변에 일독을 권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헌법과 법률의 목적은 국가권력의 괴물화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데 있다’는 내용이었다. 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헌법을 직접 찾아 읽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에는 달라졌다. ‘대한민국 헌법’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현 정부의 정책들이나 주요 인사들의 말을 놓고 툭하면 헌법 위반 여부 논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서는 헌법의 경계선을 넘나든 사안들이 수십 건에 이른다. 며칠 전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꺼낸 ‘부동산매매허가제’는 즉각 위헌 논란을 일으켰다. 강 수석은 라디오에 출연해 “부동산을 투기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매매허가제까지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애드벌룬을 띄웠다. 청와대 관계자는 “매매허가제를 추진할 생각이 없다”며 진화에 나섰으나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대다수 헌법학자들은 주택거래허가제가 헌법에 규정된 사유재산권(23조), 거주 이전 자유(14조) 등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일부 서민들은 “서울 강남 등에 진입하려면 허가증을 받아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서 ‘남쪽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파장을 낳았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 방북했을 때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주민 15만명을 상대로 “남쪽 대통령으로서 인사말을 하게 되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연설했다. 법학자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쓰는 북한에서 굳이 ‘남쪽 대통령’이라고 말한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에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외교 전문가는 “국가의 정상은 자신의 지위를 낮춰 불러서는 안 된다”면서 “어디에서든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는 게 의무”라고 강조했다.
올해부터 사용되는 중·고교 역사 교과서 내용도 위헌 소지 논란에 휩싸였다. 대한민국 이념과 정체성에 대해 교육부는 “집필진이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표현 중 고를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수 교과서에서 ‘자유’가 삭제됐다.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규정돼 있으므로 자유를 뺀 것은 잘못됐다. 민주주의 앞에 ‘민중’ ‘인민’ ‘사회’ 등 갖가지 수식어가 붙을 수 있는데다 북한도 ‘민주주의’ 용어를 쓰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표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여야 한다.
8일 검사장급 인사에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비리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 간부들을 모조리 좌천시킨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수사 대상인 청와대가 수사팀을 흔드는 것은 직권남용이자 국기문란이다. 이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는 헌법 7조와 충돌할 소지가 있다. 오죽하면 진보 성향의 김동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도 검찰 간부 인사에 대해 “헌법정신에 정면 배치된다”고 꼬집었을까.
문재인 정권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데 이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진보단체 출신의 대법관·재판관을 다수 포진시켜 상호견제 기능을 약화시켰다. 정권이 경찰·검찰에 이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까지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헌법에 규정된 삼권분립이 무너질 수 있다는 비관적 시나리오까지 흘러나온다. 특히 입법·행정·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공수처는 수사이첩 요청권을 활용해 검경이 착수한 권력비리 수사를 덮어버리는 괴물로 변질될 수 있다. 최근 만난 한 정치학자는 ‘견제와 균형원칙’ 붕괴에 따른 권력의 무한질주 가능성을 걱정했다. 그는 “게임 룰인 선거법마저 일방적으로 통과돼 운동장이 더 기울어졌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선거가 있는 나라에서는 호랑이 같은 유권자들이 브레이크를 걸면서 헌법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김광덕 논설위원 kd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