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지갑 닫힌 미술시장…천경자·이중섭도 '휘청'

미술품 양도세 등 구매심리 위축

'꽃을 든 여인' '돌아오지 않는 강'

리세일 나와 평균 낙찰가 10% 뚝

외국작품 거래 쏠림현상도 한몫

천경자의 ‘꽃을 든 여인’이 지난 22일 케이옥션 경매에서 7억원에 낙찰됐다. /사진제공=케이옥션천경자의 ‘꽃을 든 여인’이 지난 22일 케이옥션 경매에서 7억원에 낙찰됐다. /사진제공=케이옥션



지난 2016년 7억8,000만원에 거래됐던 천경자의 작품이 경매에서 7억 원에 팔렸다. 지난해 3월 1억8,000만원에 낙찰됐던 이중섭의 그림은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아 경매시장에 다시 나와 1억6,5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두 작가의 작품 낙찰가가 평균 10% 정도 하락한 것이다.

연초 미술 시장의 조짐이 밝지 않다. 경기 둔화로 지난 2018년 미술시장 전체 규모가 전년 4,942억원에서 9.3% 감소한 4,482억원 수준으로 줄어든 데 이어, 화랑거래에 비해 건재하던 경매시장마저 지난해 낙찰총액이 전년비 30%나 급감한 1,565억원에 그친 상황이라 우려가 크다.

천경자 ‘꽃을 든 여인’. 2008년 경매에 나와 5억원에 팔렸고 2016년에 다시 나와 7억8,000만원에 거래됐으며 지난 22일 경매에 출품돼 7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사진제공=케이옥션천경자 ‘꽃을 든 여인’. 2008년 경매에 나와 5억원에 팔렸고 2016년에 다시 나와 7억8,000만원에 거래됐으며 지난 22일 경매에 출품돼 7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사진제공=케이옥션


지난 22일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에서 열린 ‘1월 경매’에서 천경자(1924~2015)의 1982년 작 ‘꽃을 든 여인’이 이날 경매 최고가인 7억 원에 낙찰됐다. 이 그림이 2008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5억원에 팔린 뒤 2016년에 다시 나와 7억8,0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미술품은 동일작가의 작품이라도 크기·제작시기·완성도·재료 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므로, 같은 작품이 다시 경매에 나오는 ‘리세일(resale)’이 시장분석의 중요한 척도가 된다.


일명 ‘미인도’라 불리는 여성 인물화는 천경자의 대표작이다. 그간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천경자의 작품은 2018년 20억 원에 낙찰된 1978년작 ‘초원Ⅱ’이며 17억 원에 낙찰된 1962년작 ‘정원’이 그 뒤를 잇는다. 폭 130㎝가 넘는 대작인 이들 풍경화를 제외하면 천경자의 작품 중 고가 낙찰작 대부분은 여성 인물화다. 검은 두건을 쓴 여인을 주인공으로 한 1977년작 ‘테레사 수녀’가 8억8,000만원에 팔렸고, 하와이 원주민 여인을 그려 여행 풍물화로도 불리는 1989년작 ‘막은 내리고’는 8억6,000만원에 낙찰됐다. 그림 속에 빈센트 반 고흐를 등장시킨 1996년작 ‘고흐와 함께’가 8억2,000만원, 어머니를 상징하는 보랏빛 셔츠 차림에 담배를 즐기던 자신을 투영한 1978년작 ‘탱고가 흐르는 황혼’이 8억원에 각각 거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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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돌아오지 않는 강’. 지난해 3월 경매에서 1억8,000만원에 팔린 후 지난 22일 경매에서 1억6,500만원에 낙찰됐다. /사진제공=케이옥션이중섭 ‘돌아오지 않는 강’. 지난해 3월 경매에서 1억8,000만원에 팔린 후 지난 22일 경매에서 1억6,500만원에 낙찰됐다. /사진제공=케이옥션


이날 경매에서는 이중섭(1916~1956)이 세상을 뜨던 해에 그려 절필작으로 불리는 ‘돌아오지 않는 강’도 관심을 끌었다. 이중섭은 메릴린 먼로 주연의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과 동명의 작품을 4점이나 반복적으로 그려 이산의 아픔을 달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품작은 지난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작가 탄생 100주년 전시 때도 선보인 대표작 중 하나로, 지난해 3월 경매에서 1억8,000만원에 팔렸지만 이번에는 1억6,5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이중섭의 작품은 지난 2018년 경매에 나와 47억원에 팔린 ‘소’가 최고가 기록을 보유한다. 2010년에 35억6,000만원에 거래된 ‘황소’가 뒤를 잇고, ‘호박꽃’이 13억5,000만원에 팔렸다. 대작은 물론 화가가 남긴 작품 수 자체가 적어 시장거래가 많지 않은 편이며, 출품작은 주로 작은 소품들이다.

묵로 이용우의 ‘강산무진도’. 총 길이가 22m에 이르는 대작이며 현전하는 이용우의 작품 중 가장 큰 그림으로 알려진 대표작이다. /사진제공=케이옥션묵로 이용우의 ‘강산무진도’. 총 길이가 22m에 이르는 대작이며 현전하는 이용우의 작품 중 가장 큰 그림으로 알려진 대표작이다. /사진제공=케이옥션


미술 시장 관계자들은 성장이 둔화하는 미술시장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더욱 얼어붙었다고 보고 있다. 미술품 양도세 등이 구매심리를 위축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한 중견 화랑운영자는 “굵직한 거래는 주로 외국 작가의 작품 위주로 이뤄지고, 김환기와 이우환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근현대 한국작가의 소외가 급격해진 상황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장 전문가는 “근현대 미술에 대한 중요도 인식과 공감대 확보를 위한 다양한 전시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면서 “근본적으로는 글로벌 아트 마켓에서의 경쟁력 확보가 가능해질 수 있도록 한국 미술시장을 성장시키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전통 한국화와 고미술은 선방하고 있다. 이번 경매에 출품된 한국화와 고미술은 총 72점으로, 이 가운데 59점이 낙찰돼 낙찰률 82%를 기록했다. 괴목으로 만든 ‘경기도 돈궤’가 시작가 400만 원의 8배에 달하는 3,200만원에 낙찰됐다. 묵로 이용우(1902~1952)의 현전하는 작품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폭 22m의 ‘강산무진도’는 8,000만원에 경매에 올라 1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애호가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이용우 작품은 지난해 11월 경매에 출품된 ‘사계풍속’이 300만원에 시작해 1,7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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