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무거운 짐을 옮기는 데 도움이 되도록 수레 사용을 권장했다. 이때 사대부 관료들이 격렬하게 저항했다. ‘명재상’ 황희 정승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탄한 길에서는 효율적이지만 강원도나 평안도·황해도 같은 험로에는 쓸 수 없고 수레가 부서지면 고쳐야 해 번거롭다는 게 반대 논리였다. 결국 세종은 수레 보급 계획을 접고 말았다. 백성들을 편하게 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수레 사용을 포기할 게 아니라 도로를 닦아야 하건만 조선의 양반계급은 현상유지가 더 우선 과제였다.
변화를 두려워한 조선시대 지배계급의 퇴행적인 모습은 이앙법에서도 드러난다. 이앙법은 못자리에서 모를 어느 정도 기른 뒤 논으로 옮겨 심는 쌀농사 기법을 말한다. 논에 직접 파종을 하는 직파법보다 생산량이 많고 잡초 제거 작업이 간단하다. 이모작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배계급은 물이 많이 필요해 가뭄에 취약하다며 조선 중기까지 이앙법 자체를 금지했다. 저수지 등 관개수로를 확충하는 게 아니라 혁신기술 도입 자체를 막은 것이다.
조선 사대부들은 나라의 부를 늘려 백성을 잘 살게 하는 데는 무능했지만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을 지키는 데는 지극히 유능했다. 성종이 나라에 가뭄이 들자 금주령을 내렸을 때였다. 어느 재상이 술을 마시자 한 젊은 관료가 “재상이라도 금령을 어기면 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오히려 코너로 몰렸다. 사대부들은 유학자가 덕을 우선시하는 유가(儒家)가 아니라 법치주의를 따르는 법가(法家)를 추종했다며 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다.
이처럼 고구마 몇 개를 한꺼번에 먹은 듯 가슴이 답답해지는 조선 사회를 보노라면 지배계급이 폐쇄적일 경우 나라가 얼마나 퇴보할 수 있는지 절감할 수 있다. 사실 고려말 유학자나 조선 개국의 공신 집단인 훈구파, 중종 이후 개혁을 내걸고 전면에 등장한 사림파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평생 힘든 농사일 한번 해본 적이 없으니 백성들의 고단한 민생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이들은 계급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동일 집단하고만 교류하다 보니 책상머리에 앉아 “공자왈” “맹자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허위의식에 빠져 살았다.
이른바 조국 사태와 검찰개혁 논쟁을 지켜보노라면 역사는 반복되는가 보다. 현 집권세력은 정치적 영향력 확대에는 ‘프로 선수’들이지만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 측면에서는 ‘낙제점’에 가깝다. 대학교육 붕괴, 지방 공동화 등 민생 현안은 검찰개혁의 뒷전이다. 경기둔화나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내놓은 수단이라는 게 재정 퍼붓기다. 4차 혁명 시대를 맞았지만 승합차 호출 서비스인 ‘타다’ 사태나 원격의료서비스 논란 등에서 드러나듯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 조절을 위한 능력과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검찰개혁의 진정성도 의심스럽다. 누구나 알다시피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반 이명박·박근혜 등 전 정권에 대한 적폐수사를 위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고 특수부를 확대했다. 하지만 윤 총장이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자 청와대 수사팀까지 날려버렸다. 특히 권력자의 피의사실을 공표하면 처벌하겠다는 조항은 검찰개혁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인사들이 오는 7월 고위공직자수사처가 출범하면 윤 총장을 직접 수사할 것이라고 윽박지르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4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지금까지 겪었던 고초만으로도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말하는 광경을 보노라면 한숨밖에 나지 않는다. 대체 정치적 독립성 확보라는 검찰개혁의 최우선 목표는 어디로 가버렸나.
이제 586 민주화 세력은 조선시대 사림파처럼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 부끄러움도 잊어버렸다. 대신 인맥으로 얽힌 집단이 끼리끼리 모여 권력을 서로 나눠주면서 계층 대물림을 위한 자녀 스펙 품앗이,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등을 통해 크고 작은 불평등과 불공정, 특권을 쌓아가며 썩어들어가는 중이다. 민주화 세력이 산업화 세력의 부패를 닮아가는 현실을 두고 비극이라고 해야 되나, 희극이라고 해야 되나./choihu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