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깨끗하고 조용한 곳으로 모여든다.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 철새들의 경로가 한반도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뀌고 있는 이유다. 특히 천연기념물 228호 흑두루미의 월동지는 지난 1980년대까지만 해도 경북 고령, 대구 달성 지역이었지만 1990년대에는 구미시 해평면으로, 2000년대 들어서는 순천만으로 조금씩 서진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청정한 곳을 찾듯 흑두루미들도 공단이 조성된 곳을 피해 가는 징후가 역력하다.
흑두루미는 ‘단정학(丹頂鶴)’이라고 불리는 두루미나 재두루미와는 다른 종류다. 두루미는 하얀 몸통 털에 날개 깃의 끝이 검고 정수리에 붉은 점이 찍혀 있어 붉은 단(丹)자와 정수리 정(頂)자를 써서 단정학이라고 부른다. 또 재두루미는 회색빛 털을 두르고 있지만 흑두루미는 목 아래 깃털이 검은색이고 단정학이나 재두루미와 비교하면 몸집이 약간 작다.
겨울 진객 흑두루미는 현재 순천만습지에 2,500여마리나 모여들어 있다. 지난해 10월18일에 처음 관찰된 후 그룹 단위로 삼삼오오 모여든 무리다. 12월에서 1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모여든 흑두루미들은 3월 중순까지 이곳 순천만습지에서 겨울을 난 후 다시 북쪽 고향으로 회귀하는 비행에 나설 채비를 한다. 흑두루미들이 겨울을 나러 오면 해마다 100만명의 관광객들이 새들을 보기 위해 따라 모여든다.
흑두루미의 군무를 보려면 일몰에 맞춰 순천만습지를 찾는 게 좋다.
흑두루미들은 갯벌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순천만 인근 농경지로 이동해 먹이 활동을 한 후 온종일 머물다 해가 질 무렵에 갯벌로 와서 잠을 자는데 갯벌로 이동하는 동안 무리를 지어 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날씨가 유난히도 따뜻한 편이다. 이에 따라 끝물 한파라도 시작되면 더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려는 흑두루미의 특성상 다른 곳에 있던 개체들이 순천으로 찾아들어 무리의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황선미 순천시 주무관은 “흑두루미들의 월동지는 우선 안전해야 하고 사람들로 인한 서식환경 교란이 없어야 한다”며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 국내에는 많지 않은데 그나마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월동지가 순천만”이라고 설명했다. 흑두루미 중 일본 가고시마의 이즈미시로 향하는 개체들은 그동안 대부분 대구 달평습지를 거쳐 이동했다. 그 코스가 가장 짧은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남지방이 개발로 오염되면서 이동 루트가 순천만으로 집중되는 추세다. 또 다른 기착지였던 서해안의 천수만도 환경이 악화하면서 개체 수가 줄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순천만을 찾는 흑두루미의 개체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황 주무관은 “주민들이 나서 울타리를 제작하고 차량출입을 통제하는 등의 활동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흑두루미들은 러시아에서 번식하고 순천으로 이동해 월동하는데 월동지 환경이 번식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이맘때 순천만습지를 찾았을 당시 담당 직원에게 “오늘 흑두루미 숫자가 얼마나 되느냐”고 무심코 물었더니 “2,358마리가 있다”고 대답을 했다. 마지막 자리까지 정확히 대답하는 것이 어이가 없어 웃었더니 그 공무원은 “흑두루미의 숫자를 계수기로 찍어가면서 매일 세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정색을 하던 것이 생각났다. 흑두루미를 보호하려는 노력은 그만큼 간단없이 이어지고 있다.
황 주무관은 “국가습지보호지역과 람사르사이트로 등록된 곳은 우리나라에서 순천이 유일하다”며 “농경지에 울타리를 만들고 순찰을 하는 등 순천주민 주도로 보호활동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과도한 농약 사용도 금지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일명 ‘대대들’이라고 불리는 흑두루미희망농업단지 59㏊에서는 무농약 농업을 하고 있다. 농약을 쓰면 흑두루미뿐 아니라 순천만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에도 영향이 불가피해 2009년부터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했다. 한발 더 나아가 순천시는 흑두루미의 먹이를 확보하기 위해 순천만 인근 농민들과 ‘생물다양성관리계약’을 체결했다. 추수가 끝난 논에 벼를 베지 않은 채로 눕혀 둬 철새들의 먹이로 활용하도록 하는 계약이다.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려는 노력이 결실을 보아 흑두루미를 불러들이고 흑두루미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순천만 습지다.
/글(순천)=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