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직권남용죄의 적용 범위를 좁히는 새 기준을 제시하면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박근혜 정부 인사들이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직권남용죄의 범위를 기존보다 엄격하게 제한한 것이어서 현재진행 중인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국정·사법농단 재판은 물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현 정권 주요 인사의 재판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기사 6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에 법리오해와 심리미진이 있다며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그간 ‘적폐수사’ 등에 적용된 직권남용죄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놓은 최초의 판단이다. 김 전 실장 등은 박근혜 정부 시절 진보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기 위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실행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법원은 이들에게 적용된 직권남용 혐의를 기본적으로 유죄로 판단했지만 일부 혐의에서 직권남용죄를 적용하기에는 원심이 법리를 잘못 적용하고 심리도 충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고 사람이 ‘의무 없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일부 혐의에서는 공무원의 업무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고 2심에서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조 전 장관은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 징역 2년으로 형량이 늘어났다. 대법원이 직권남용 범위를 좁게 해석하면서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의 형량은 하급심에서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