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폭로’ 공로로 더불어민주당 13호 인재로 영입된 이수진(51·사법연수원 31기) 전 부장판사가 “양승태 사법부에 저항하다가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자신을 알린 가운데 이 주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연루자 공소사실에도 존재하지 않아 법원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당시 법원 상황을 아는 일부 법조인들은 그에 대한 인사가 사법농단 저항과 무관하게 근무 능력 문제 때문이었다는 지적을 내놓았고 상당수 판사들은 그의 발령지인 대전지방법원이 부장판사 승진 첫 부임지로는 최선호지였다는 점을 들어 불이익으로 볼 수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전 부장판사 측은 이에 대해 “누가 봐도 양승태 사법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해 받은 불이익이 확실하다”고 반박했다.
이 전 부장판사는 지난 27일 민주당 총선 인재로 영입되면서 “법관으로 양심을 지키고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무분담과 인사평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블랙리스트 판사’가 됐다”고 자신의 대표 이력을 소개했다. 민주당 역시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 전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최대 피해자 중 한 명”이라며 “대법원 재판연구관 재직 당시 양 전 대법원장 인사 전횡을 비판하는 공개토론회 개최를 막으라는 법원행정처 지시를 거부해 ‘대법원에서 퇴거당하는’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부장판사는 2015년 2월부터 2년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다 만 15년 경력이 된 2017년 2월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면서 대전지법 부장판사로 발령이 났다. 2015년 2월 대법원이 신규 재판연구관에 한해 해당 보직 근무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렸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그의 인사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창립 멤버인 이 전 부장판사가 당시 이 연구회 내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주요 회원으로 활동했고, 그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인사모 핵심 회원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취지의 대법원 문건도 나중에 발견된 건 사실이다. 이를 두고 그는 현직 판사 시절부터 언론을 통해 “2년 만에 강제로 대법원에서 쫓겨나는 정상적이지 않은 인사 발령을 받았다”고 주장해 왔다.
최근 대법원 재판연구관 근무 경력이 있는 한 재경지법 법관은 “2015년 이후 재판연구관이 되면 3년은 근무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내부 믿음이 있었고 2년 만에 전보 조치 된 건 아마도 이 전 부장판사가 유일할 것”이라며 “이 전 부장판사가 대법원 잔류를 희망했다면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이 전 부장판사가 명확한 근거도 없이 자신만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의견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서울경제 취재진이 양 전 대법원장 공소장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양승태 사법부에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로 2017년 2월 문책성 인사 ‘검토’ 대상이 됐다는 법관 7명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법원행정처가 반대하는 공동토론회를 추진하다가 문제가 된 이는 당시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였던 김형연(54·29기) 현 법제처장이었다. 7명 중에서도 검찰이 그해 정기인사에서 실제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고 본 법관은 송승용(46·29기) 수원지법 부장판사 한 명뿐이었다. 대법원 강제 퇴거를 주도한 인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에도 이 전 부장판사에 대한 인사 탄압 사실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 전 부장판사의 대법원 시절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당시 그의 근무태도에 관한 뒷이야기가 법원 안팎에서 더 크게 회자되고 있다. 당시 법원행정처 사정에 밝은 한 고위 법관은 “이 전 부장판사가 재판연구관 시절 연구보고서를 거의 올리지 않아 대법관들의 불만이 팽배했었다”며 “이 전 부장판사가 서울 잔류가 불발되자 임종헌 전 차장에게 격렬히 항의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중견 법관은 “이 전 부장판사가 대법원에 재직할 때 그가 앞장서서 사법부에 저항했다는 기억을 가진 사람은 못 봤다”며 “오히려 2017년 2월 인사 이후 폭로자를 자임하며 활동폭을 늘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전지법이 첫 지법 부장 승진 뒤 배치받을 수 있는 최선호 법원이란 점도 판사들이 그의 인사 탄압 주장에 의문 부호를 붙이는 부분이다. 법원 내부 기준에 따르면 당시나 지금이나 모든 지법 부장 초임 발령지는 원칙적으로 무조건 수도권 밖이다. 그 중 수도권에 그나마 가까운 대전은 초임 부장판사들에게 압도적으로 인기가 높은 근무지로 정평이 나 있다.
2002년 인천지법 예비판사로 보임한 이 전 부장판사는 2003~2006년 서울에서 근무하다 2006~2009년 3년간 부산지법에서 처음 지방 순환 근무를 했다. 이후 2009년 2월 다시 서울로 올라와 대전지법으로 발령이 난 2017년 2월까지 8년간 줄곧 서울에서만 근무했다. 2018년 법원 자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2월 지법 부장급이 대법원에 보임된 경우는 재판연구관 7명(29기 3명, 30기 4명), 심의관 3명(27기 1명, 29기 1명, 30기 1명)뿐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첫 부장 보임지가 대전지법으로 된 것은 일반적으로 오히려 혜택”이라며 “이 전 부장판사가 잔류를 희망했다가 관철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다른 법관들 역시 자기가 원하는 곳에 보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과거 2년간 재판연구관 경력이 있는 한 지법 부장판사는 “부장 승진 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남는 경우는 지금도 굉장히 적고 거의 다 지방법원으로 바로 발령이 나는 편”이라고 밝혔다.
이 전 부장판사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대법원에서 최선을 다해 근무했는데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으로 상고법원 제도와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비판해서 불이익을 받았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며 굉장히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전 부장판사는 본지 취재진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검찰 공소장에는 확실하게 밝혀진 혐의만 들어간 것”이라며 “당시 인사평정과 대전지법 발령은 불이익이 맞는데 사법행정권 남용 등 혐의에 연루된 쪽에서 자꾸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흘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법농단 수사 때도 대법원에서 수차례 야근까지 하며 얼마나 열심히 일했고 대법관들이 나를 좋게 봐줬는지 검찰에 있는 그대로 진술했다”며 “임 전 차장 등이 나를 대전지법에 보낸 건 자신들이 3년 인사 원칙을 무시한 상황에서 더 오지로 보낼 경우 문제가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