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콘텐츠의 인기에 힘입어 최소 120분을 넘었던 영화 러닝 타임이 짧아지고 있다. 동영상 재생 사이트를 통해 짧은 영상들을 접하면서 자라온 젊은 세대들의 취향에 영화계도 발을 맞춘 것이다. 이런 추세는 공포, 누아르, 코믹 등 짧은 시간을 임팩트있게 활용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장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최근 개봉한 하정우, 김남길 주연의 ‘클로젯’은 벽장이라는 소재를 통해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공포물이다. 러닝 타임은 98분. 사고로 엄마가 죽은 후 이사한 새 집에서 이상 행동을 보이던 딸 이나(허율)가 사라지고, 딸을 찾는 아빠(하정우) 앞에 퇴마사 허 실장(김남길)이 나타나면서 이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서서히 밝혀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관객들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벽장이 주는 긴장감과 현악기, 아이들의 웃음소리 등 사운드 효과로 극대화된 공포 속에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가뜩이나 짧은 러닝타임이 금새 지나간다.
‘정직한 후보’는 ‘라미란 표 코믹 연기’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104분의 코미디물이다.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답시며 거짓말을 하는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이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진실의 입’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여러분을 모두 부자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 대신 “절대 부자로 만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등 당황스러운 상황이 전개되면서 ‘서민의 일꾼’ 이미지를 쌓아 온 그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온다. 허세 남편 봉만식(윤경호)이 깍두기 담그는 행사까지 참여하며 외조를 펼치다가도 집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웃음을 유발한다. 여기에 현실정치 풍자까지 어우러져, 108분이라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은 포복절도부터 쓴웃음까지 다양한 웃음으로 꽉 찬다. 12일 개봉.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 먼저 주목 받은 정우성, 배성우, 전도연 주연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블랙 코미디를 가미한 범죄 스릴러물이다. 러닝타임은 108분. 사채 빚에 시달리며 한탕을 꿈꾸는 태영(정우성),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중만(배성우), 새 인생을 살기 위해 남의 것을 탐하는 연희(전도연) 등 벼랑 끝에 몰린 세 남녀 앞에 거액의 돈 가방이 나타나면서 ‘인생 한방’의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는 이들의 치열한 몸부림이 펼쳐진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인생의 기회’는 오히려 ‘인생 최대의 위기’로 다가온다. 궁지에 몰린 이들이 놓인 극한 상황이 처참하면서도 ‘웃픈’ 상황 때문에 영화는 블랙 코미디와 범죄스릴러 장르를 오가며 관객들을 쥐락펴락한다. 이 작품이 데뷔작인 김용훈 감독은 짧은 시간 안에 장르물의 장점을 솜씨 좋게 담아내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주목하게 한다. 2월 중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