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002320)그룹 오너 일가(家)가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동안 항공사업 업황 악화로 계열사의 재무구조에 비상등이 켜졌다. 특히 일본 노선에 이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코로나)으로 중국 노선까지 타격을 입으며 차입금 상환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미 계열사인 진에어는 지난해 49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003490)은 최근 공모채 시장에서 1,6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어렵게 발행했다. 공모채 시장에서 두 차례 수요예측을 진행했지만 기관 자금 모집에 실패해 미매각을 기록했고, 동일 신용등급 최고 금리로 금리를 조정해 목표 금액을 모을 수 있었다. 대한항공은 해외 투자자를 상대로 3억달러(약 3,4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발행할 계획이지만 시장에서는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다. 대한항공이 잇따라 영구채와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차입금 상환을 위해서다. 대한항공은 6월부터 영구채(7,000억원) 조기상환이 계획돼 있다. 아울러 회사채를 비롯해 금융기관에서 빌린 차입금 상환도 줄지어 계획돼 있다. 한진칼(180640) 역시 다음 달 2일까지 700억원의 회사채를 상환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한진그룹이 자체 자금으로 이를 상환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지난 3·4분기 기준 한진칼의 현금성자산은 1,764억원 수준. 부동산 등을 매각하더라도 74억원에 불과하다. 결국 차입금 상황을 위해서는 회사채 등을 발행해야 하는데 상황은 최악이다. 3월 주총을 앞두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KCGI·반도건설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그룹의 리스크가 커진 상태에서 선뜻 회사채를 사 줄 기관이 나타날 지 미지수다. 여기다 해외차입을 한다고 해도 대한항공이 글로벌 신용등급은 실적 저하와 낮은 재무안전성으로 인해 사실상 투기등급을 받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오는 10월 예정된 9억달러(1조1,000억원) 규모의 한진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HIC) 리파이낸싱 차입금 만기도 문제다. 미국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윌셔그랜드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HIC는 대한항공이 8,058억원을 투자하고, 국내외 금융기관에 8억1,000만달러(9,700억원)를 빌려 지어졌다. 대한항공은 2017년 한 차례 리파이낸싱을 진행하며 차입금이 1조1,000억원까지 늘었고, 이에 대해 전액 채무보증을 섰다. 대한항공은 1조5,545억원에 담보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HIC의 개관 이래 한 차례도 수익을 내지 못했다. 아울러 한진칼은 매년 적자를 내고 있는 칼호텔네트워크에, 대한항공은 왕산레저개발에 투자를 함과 동시에 산업은행에게 빌린 차입금에 대한 수 천 억원에 대한 지급보증도 서 있는 상태다.
금융권에서는 오너 일가의 경영권 다툼으로 회사의 불안정함이 극대화 될 수록 한진그룹의 재무 상황은 더욱 악화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대한항공과 한진칼은 재무건전성이 약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이 하락할 경우 차입금에 대한 이자와 비용 부담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모 회사인 대한항공의 재무건전성 악화를 이유로 HIC의 신용등급 전망을 ‘B-부정적’으로 하향조정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영구채 발행을 추진하고 있지만, ‘오너 리스크’가 지속되며 업계의 신뢰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며 “윌셔그랜드호텔이 트리거로 작용해 ‘제2의 아시아나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날 진에어는 지난해 9,102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해 전년(1조107억원) 대비 9.9%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은 각각 491억원, 542억원으로 적자로 전환했다.
진에어의 실적 악화는 부정적인 영업 환경과 함께 국토부 경영 제재가 지속되며 신규 노선 취항 및 부정기편 운항 제한 등이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