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다니면서 네 살 배기 아들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 김현영(가명)씨는 요즘 깊은 한숨을 내쉬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 우려로 어린이집이 임시 휴원하면서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휴원 중인 어린이집과 유치원이라도 김씨와 같은 맞벌이 부부들에겐 긴급돌봄서비스가 제공되지만 혹시 모를 감염이 걱정될뿐더러 친구도 없는 어린이집에 홀로 있을 아이를 떠올리면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부의 육아도우미를 집안에 들이는 것도 불안하다. 남편과 번갈아 연차를 쓰면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곤 있지만 점점 직장상사의 눈치가 보인다. 결국 마음 아프지만 당분간 부산에 계신 친정 부모님 댁에 아들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신종코로나 확산 여파로 때 아닌 ‘보육대란’을 겪는 워킹맘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문 닫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늘고 있는데다 감염 걱정에 선뜻 외부 육아도우미에 아이를 맡기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친정이나 시댁에 육아를 부탁하는 맞벌이 부부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상황이 이렇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맞벌이 부모들이 의무적으로 휴가를 쓰고 가정보육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9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휴업 중인 전국 유치원은 500곳에 육박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판단에 따라 휴원령이 떨어진 어린이집은 전국적으로 3,000곳을 훌쩍 넘는다. 전국 어린이집 10곳당 1곳꼴로 문을 닫은 셈이다. 향후 신종코로나 확산에 따라 휴원 기간이 더 늘어나거나 추가로 문 닫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맞벌이 부부 등 자녀돌봄이 어려운 가정을 위해 전국의 시·도 교육청은 긴급돌봄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지만 참여율이 저조해 사실상 운영되지 않고 있다. 일산에 사는 워킹맘 이모씨는 “맞벌이 부부들은 유치원이 문 닫아도 아이를 맡길 수 있다고 얘기 들었다”면서도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를 보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아이만 외롭게 남겨져 있을 생각을 하니 안쓰러워 차마 맡길 수 없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적지 않은 가정은 혹시 모를 감염을 우려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휴원하지 않더라도 당분간은 아이를 등원시키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신종코로나 공포가 확산하면서 육아도우미업체들에게도 불똥이 떨어지고 있다. 외부인을 집안으로 들여 아이를 맡기는 것 자체를 꺼리기 때문이다. 육아도우미전문 A업체 관계자는 “신종코로나 사태 이후 예정됐던 도우미 면접이 취소되거나 이미 이용 중이던 가정도 서비스를 종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아무래도 어린 아이를 키우는 가정일수록 외부인과의 접촉 자체를 꺼려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 6개월간 중국에 다녀온 적이 없더라도 중국 조선족 교포라는 이유로 도우미 면접에서 퇴짜를 맞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종코로나 사태로 육아대란이 현실화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책을 요구하는 워킹맘들의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지난 4일 한 워킹맘은 게시판을 통해 “맞벌이 부부의 경우 휴가를 내서 자녀를 가정보육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가 한시적으로 맞벌이 부모들이 가정보육할 수 있도록 각 지자체와 관공서, 기업들에 지침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워킹맘도 “휴원한 유치원에서 당번교사를 정해 긴급돌봄을 하는 것보다 맞벌이 부부들이 회사 눈치를 보지 않고 번갈아가며 휴가를 쓸 수 있게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