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업으로부터 걷은 법인세가 당초 예상보다 7조원 이상 부족할 만큼 세수 여건이 나빠진 것은 기업 증세의 부작용이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선진국들은 일제히 법인세율을 낮춰 경기부양에 나섰는데 한국만 ‘나 홀로 역주행’을 고집해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린 것은 물론 지난 2014년 이후 5년 만에 ‘세수 결손’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는 것이다.
美·佛 등 경기부양 위해 법인세 일제 인하
10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법인세율을 낮춘 나라는 총 16곳이었다. 프랑스의 경우 올해부터 법인세율(이하 지방소득세 포함)을 대기업은 33.3%에서 31%로, 중소기업은 31%에서 28%로 낮췄다. 프랑스는 또 오는 2022년까지는 모든 기업의 법인세율을 25%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인하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미국은 2018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38.9%에서 25.9%로 한꺼번에 13%포인트나 인하했다. 일본의 경우 2012년 39.5%에 달했던 법인세율을 2016년 30.0%로, 2018년에는 29.7%로 끌어내렸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세계 94개국 중 76개국이 2000년에 비해 법인세율을 인하했다. 이에 따라 OECD 회원국의 평균 법인세 최고세율은 2000년 32.2%에서 2018년 23.7%로 8.5%포인트 낮아졌다. 또 주요20개국(G20)의 법인세 평균 최고세율은 2010년 25.1%에서 지난해 23.5%로 떨어졌다.
‘글로벌 스탠더드’ 역행 韓…‘세수 펑크’ 부메랑
선진국들의 이런 움직임과 달리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24.2%에서 27.5%로 인상했다. 기업들로부터 걷는 법인세 수입을 확대해 복지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정부가 내세운 법인세 인상의 명분이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2014년 대비 지난해 법인세율을 올린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칠레·그리스·라트비아·슬로베니아 정도였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는 한국 정부의 정책은 ‘세수 펑크’로 돌아왔다. 기재부가 이날 발간한 ‘월간 재정동향 2월호’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 수입은 293조5,000억원으로 정부 예산(294조8,000억원)보다 1조3,000억원 모자랐다. 국세 수입이 예산보다 적은 것은 2014년 이후 5년 만이다. 법인세수 역시 72조1,743억원으로 2019년 예산안(79조2,501억원)에 비해 7조758억원 부족했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법인세를 올려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면 장기적으로 기업들이 너도나도 해외로 빠져나가려고 할 것”이라며 “투자 감소와 고용 부진 등이 겹쳐 경제 전반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 실적 악화에 올해 세수도 문제
문제는 주요 선진국보다 한참 높은 법인세율 탓에 올해 세수 여건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는 점이다. 당장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급감하면서 정부는 올해 법인세수 예상치로 지난해보다 18.7% 낮은 64조4,000억원을 제시했다. 지난해 법인세 규모가 72조2,000억원임을 고려하면 2014년 이후 6년 만에 법인세수가 감소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국세 수입 규모 역시 지난해와 비교해 1조5,000억원가량 적은 292조원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입 기반은 결국 기업의 이익에서 출발하는데 이익이 감소하니 세율을 높여도 세수 규모가 줄어드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정책 전환=실패’라고 받아들이는 이상한 신념을 버리고 지금이라도 법인세 인하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나윤석·한재영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