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철가면’은 17세기 프랑스의 감옥에 철가면을 쓴 채 갇혔던 정치범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다.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가둬놓은 죄수라는 등 그를 둘러싼 이야기는 권력암투와 뒤섞여 실화인지 허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씌워진’ 철가면과 달리 아이언맨을 비롯해 배트맨·스파이더맨 등 ‘히어로’들의 마스크는 초인적 능력의 보유자임을 감추기 위한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춤을 추는 ‘가장무도회’는 자신이 아닌 척 가장(假裝)해 본래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여흥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수단이었다.
이처럼 문화적으로 ‘특별’했던 마스크가 우리의 일상에 파고들었다.
마스크의 일차적 목적은 보건과 위생이다. 실제로 21세기 들어 빈발하는 전염병이 마스크를 우리의 일상으로 끌고 들어왔다. 지난 2003년 동남아에서 발생한 사스가 아시아 전역을 위협했고, 2009년에는 신종인플루엔자가 전 세계를 벌벌 떨게 했으며, 2012년에는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메르스가 확산하면서 호흡기를 통한 바이러스 전파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이다. 여기에 시도 때도 없이 대기를 덮치는 황사와 미세먼지가 가세했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유럽 내 석탄 소비량이 늘면서 연기와 안개가 뒤섞인 스모그가 런던에서만 수천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면 21세기 우리나라에서는 초미세먼지 공포가 커졌다. 마스크는 생활필수품이 돼버린 것이다.
마스크는 때로는 범죄자의 복면처럼 얼굴을 가려 자신의 신분을 숨기는 수단이 된다. 최근에는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군중의 상징으로 마스크가 부상했다. ‘송환법(범죄인 인도법안)’ 반대를 주장하는 홍콩의 민주화 시위대가 마스크를 착용하자 홍콩 정부는 ‘복면금지법’으로 맞섰지만, 이는 오히려 더 큰 반발만 불러일으켰다. 국내에서는 2016년 이화여대 입시 비리와 관련해 열린 총장 사퇴요구 집회에서 3,500명 이상의 참가자 전원이 마스크를 써 눈길을 끌었다. ‘미투(me too)’를 지지하는 여성단체의 시위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마스크는 얼굴을 가려 자신을 특정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익명의 다중이 외치는 보편적 주장과도 같은 ‘마스크의 정치학’을 보여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위에서의 마스크 착용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체제·정부에 저항해 사회적 억압을 드러내는 정치적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정치적 참여행위에서 마스크는 새로운 가치와 관행을 주장하며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한류 열풍은 마스크가 패션으로 자리 잡는 데 한몫했다. K팝 스타 등이 공항과 거리 등에서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 노출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퍼지면서 ‘마스크=하얀색’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졌고 ‘블랙마스크’에 대한 소비량이 늘었다. 마스크가 패션 아이템이 되면서 디자인·소재에 따라 수만원 이상의 고가 마스크가 유통되기도 했다.
일찌감치 ‘마스크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최근 들어 젊은이들이 자기방어 수단의 하나로 마스크를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본은 국민의 약 30%가 꽃가루 알레르기 증세를 가진 것으로 추산될 만큼 봄철 꽃가루가 ‘국민병’ 양상을 일으키면서 마스크 사용이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조심스러워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의 일본인들은 기침이나 재채기에 대비해 마스크를 쓰기 때문에 전염병이 퍼지는 시기가 아니어도 거리 곳곳에는 항상 흰색 마스크 물결이 넘실댄다. 마스크로 얼굴을 숨기는 데 대해 경계감이 강한 서구에서는 평상시에도 너나없이 보건용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일본인들의 모습에 놀라움을 드러낸 보도가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2018년 일본의 마스크 국내 생산과 수입 총량은 약 55억3,800만장으로, 약 1억2,600만명의 일본 인구가 1인당 연간 43장꼴로 마스크를 소비하는 셈이다.
그러나 일본인의 마스크 착용 목적이 단지 보건이나 패션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닛세이기초과학연구소는 최근 일본인의 경향과 관련해 “마스크를 이용해 대인 불안을 완화하고 콤플렉스를 가리는 등 현대사회에서 마스크가 자기방어 수단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화장을 안 한 민낯이나 수염을 가리려는 것을 넘어 타인의 접근을 막고 표정 변화를 남에게 숨기는 대인기피적 수단으로 마스크를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SNS 등의 확산으로 젊은 세대가 대면 소통을 어려워하는 우리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연구소 측은 “항상 마스크를 착용할 경우 마스크를 벗는 것이 불안해지는 등 과도한 ‘마스크 의존증’이 사회적 고립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필수품’이 된 마스크는 불안에 대한 자기방어로서의 역할이 크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던 지난달 20일부터 일주일간 편의점의 마스크 매출은 전월 대비 10배 이상 급증했다. 중국에서 수급하는 마스크 생산 원료의 충당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 ‘3월 마스크 대란설’이 퍼지면서 사재기 현상이 만연해졌다. 요즘은 공공장소·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을 경우 ‘민폐’ 취급을 받거나 ‘마스크 난민’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시위 현장에서의 마스크는 자신을 숨기며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데 전염병 확산기의 경우 마스크를 통해 안도감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곽 교수는 “감염 확진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불안감이 바이러스보다 더 큰 적”이라며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소독제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타인이 마스크 쓴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서로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기에 마스크 하나로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자신을 방어하는 기분을 얻는다는 것은 상당한 효과”라고 분석했다.
마스크와 더불어 점막을 통한 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고글과 위생용 장갑의 매출도 들썩이고 있다.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TV 시청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쿠팡이 창사 이래 최고 매출액을 기록하는 등 집에서 온라인으로 쇼핑하는 e커머스가 전성기를 맞았다. 몸의 건강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못지않게 불안과 불신이 사회를 좀먹고 사람 간 접촉과 교류가 급감하는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