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6일, 류명걸 선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뜨거운 사막을 12일째 모터사이클로 달리고 있었다. 10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인 최초로 출전한 다카르랠리 모터사이클 부문. 1979년 대회 창시 이래 사망한 참가자 수가 75명이 넘을 정도로 악명 높고 험난한 코스가 이어졌다. 오프로드로 10여일을 질주하는, 드라이버들의 ‘꿈의 경기’이자 ‘죽음의 레이스’로 불리는 다카르랠리에서 육체적 고통, 죽음의 공포와 사투를 벌인 끝에 류 선수는 한국인 최초의 완주 기록을 세웠고 아시아인으로서 사상 최고 기록(40위·52시간40분26초)을 남겼다. 그의 헬멧에 붙은 태극기가 무색하리만치 국내의 관심은 미미했다. 하지만 최근 경기도 남양주의 전용 연습장 겸 정비소 ‘RYU27’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류 선수는 “다카르랠리 완주라는 꿈을 이룬 후 삶에 대한 고마움이 더 강해졌다”고 했다.
류 선수는 ‘다카르 키즈’다. 1996년 쌍용자동차 후원으로 다카르랠리 자동차 부문에 출전했던 최초의 한국인 김한봉 선수는 당시 10대였던 류 선수에게 ‘랠리스트’라는 꿈의 씨앗을 심어줬다. 이후 모터사이클은 오랜 시간을 거쳐 스며들듯 그의 인생이 됐다. 류 선수는 “시골(충남 청양)에서 자란 탓에 ‘오토바이’가 일상적인 교통수단이었고 군 제대 후 곰곰이 미래를 고민하다 보니 모터사이클이 좋을 것 같아 자동차검사과를 전공으로 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학교 졸업 후에는 유럽 모터사이클 브랜드인 KTM으로 직장을 정했다.
모터사이클 회사에 근무하면서 한동안 모터사이클은 그의 직업이자 취미로만 머물렀다. 비포장도로·산길 등을 달리는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을 좋아해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외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고 때때로 우승도 했지만 ‘다카르랠리 출전’이라는 꿈에 마침내 인생을 걸기로 결심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인 2016년의 일이다. 몽골랠리에서 다카르 출전 경험이 있는 몽골 선수를 제친 것이 계기가 됐다. 류 선수는 “나도 다카르에 나갈 실력이 되겠구나 싶어 2020년 참가로 아예 못을 박았다”고 회상했다.
2018년 2월 직장을 그만두고 살던 집의 전세보증금까지 빼 다카르랠리 참가 준비에 ‘올인’했다. 2년의 시간과 3억원의 비용을 들이기로 한 만큼 일과 훈련을 병행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었다. 남양주에 모터사이클 보관과 정비, 숙식이 가능한 시설과 랠리 훈련장을 마련했다. 오프로드 모터사이클로 흙길과 자갈밭, 바윗돌 무더기를 넘나드는 훈련과 더불어 수영·필라테스 등 기초체력 운동에 매일같이 전념했다.
배변도 훈련 대상이었다. 한창 달리는 와중에 용변이 급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다카르랠리는 12일 동안 7,800㎞ 이상의 코스를 정복해야 하는 대회다. 매일 아침 선수들에게는 화살표 네다섯 개, 방향각 등 숫자 서너 개만 적힌 암호표 같은 지도가 주어진다. 수차례 다카르랠리에서 우승한 선수도 길을 잃고 헤맬 정도다. 시속 100㎞로 달려도 뒤처지는 상황에서 경기 복장을 벗었다 입는 단 몇 분도 낭비할 수 없다. 류 선수는 “아예 소변주머니를 차고 대회에 임하는 선수들도 있다”고 전했다.
다행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준 친구들이 있었다. 비행기 전문 사진작가인 정주영 작가가 초반부터 후원 섭외 등의 굵직한 임무를 도맡아 물심양면으로 류 선수를 도왔고 마지막에는 함께 사우디아라비아까지 날아갔다. 인터뷰에 동석한 정 작가는 “완주하면 한국 최초, 완주를 못 해도 ‘쿨러닝(자메이카 선수들의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경기 출전을 다룬 영화)’처럼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며 “돈이 되지는 않더라도 도전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증명하고 싶었고, 류 선수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모터사이클 동호회의 지인들도 나섰다. 다카르랠리 규정 등 각종 정보를 번역해 서류 작업을 도맡아주고 준비부터 출전까지 다카르랠리의 전 과정을 담은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어줬다. 류 선수가 “도대체 나에게 뭘 바라고 그렇게까지 도와준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농담할 정도다.
그럼에도 기업후원이 박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류 선수에게 가장 많은 출전자금을 후원한 이는 ‘처갓집양념치킨’ 지점을 운영하는 오프로드 모터사이클 동호회의 지인이다. 정 작가가 2018년부터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을 포함해 수없이 후원제안서를 보냈지만 대부분 응답조차 없었다. 뒤늦게 류 선수의 출전 소식을 접한 외국 모터사이클 수입사 대표가 “명색이 대한민국 최초인데 이럴 수가 있느냐”며 사비를 털어 후원금을 보냈을 정도다. 경기 출전에 가장 중요한 모터사이클을 후원하겠다는 기업도 없어 결국에는 체코의 랠리팀 ‘클림치브’에서 모터사이클을 빌렸다. 전 세계 헬멧 시장 1위인 토종 한국 기업 홍진HJC에서도 류 선수 전용 헬멧과 후원금을 전해왔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1월5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2020다카르랠리에 참가했다. 류 선수는 “지난 2년간 내 모든 것을 걸었고 완주를 하지 못하면 분명히 다음에 또 도전하겠다는 생각이 들 테니 이번 랠리에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 잘해도 못해도 이번에 끝낸다”는 마음가짐이었다고 회상했다. 매일 새벽3시에 일어나 최고기온 50도의 뜨겁고 건조한 모래밭을 달렸다. 오후6~7시쯤에는 주최 측이 마련한 임시숙소에서 눈을 붙였다. 때때로 전갈이 기어 다니는 바닥에 칸막이도 없이 마련된 이부자리에 몸을 뉘여야 하는, 거대한 이재민 수용시설 같은 숙소다. 3,000명의 출전 팀, 주최 측, 보도진 관계자와 테스트 중인 바이크, 숙소에 전기를 제공해주는 발전기가 만들어내는 소음 때문에 수면제의 도움을 청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랠리 내내 류 선수를 괴롭힌 것은 육체적인 고통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다카르랠리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사망이나 부상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본인의 책임’이라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한다. 현장에서는 물리적으로 척박한 환경에 고립돼 있다 보니 죽음이 대한 공포가 너무나 생생했다”고 털어놓았다. “심한 부상을 입고 구조되지 못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너무나 현실적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올해 다카르랠리에서도 2명의 선수가 사망했다. 사막에는 설산·빙하지대와 마찬가지로 눈에 잘 띄지 않는 ‘크레바스’가 있고 모래언덕 같지만 사실 낭떠러지인 지형도 널렸다. 다카르랠리의 완주율은 자동차·모터사이클·사륜바이크(ATV)·트럭 등 전 부문을 통틀어 50% 안팎에 그친다.
류 선수는 빌린 바이크라 한계치까지 몰아붙일 수도, 자금 부족으로 바이크 수리에 쓸 돈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보다 상대적으로 살살 달렸지만 결과적으로는 꾸준히 안전하게 달린 셈이 돼 후반부인 11구간에서는 한꺼번에 경쟁선수 50여명을 추월하기도 했다. 다행히 바이크는 끝까지 별 탈 없이 그와 함께 달려줬다. 클림치브는 현재 이 바이크를 경매에 내놓은 상태다. 다카르랠리 출전 바이크는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류 선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직장도 집도 없지만 그는 “뭐라도 하면 되니까 걱정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다카르랠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의 도전을 응원하는 이를 만났고 오는 3월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그는 “내 삶의 목적이 아파트·자동차라면 슬플 것 같아서 다카르랠리라는 꿈을 품은 것”이라며 “짧은 인생 동안 무엇이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가슴 떨리는 일을 하며 살아야 살아 있음을 느끼지 않겠느냐”고 했다.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은 경험 덕분에 더 묵직하게 들리는 말이다. /남양주=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
◇ he is...
△1981년 충남 청양 △2007년 신성대 자동차검사과 졸업 △2007~2018년 KTM 인증팀·부품팀·영업팀 근무 △2017년 SSER 랠리 몽골리아 4,000㎞ 8Days 한국인 최초 우승 △2018년 멕시코 바하랠리 클래스1 한국인 최초 우승 △2019년 아프리카 메르주가랠리 19위 △2020년 사우디아라비아 다카르랠리 모터사이클 부문 4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