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여는 수요일] 한바탕 당신

- 박이화

당신이라는 말 속에는


풍선껌 향기가 난다

사각사각 종이 관을 벗기자

얇고 반짝이는 은박지에 싸여 있는 당신,

그 희고 매끈한 몸이

곧 구겨질 은박지 속에서

꿈꾸듯 긴 잠에 빠져 있는 듯하다

이미 4만 년 전부터


죽은 이의 가슴에 국화꽃 다발을 얹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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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오란 꽃가루보다 더 향기로운

포도 맛 당신, 딸기 맛 당신, 복숭아 맛 당신이

마침내 내 혀와 침 사이에서

한없이 부드럽고 달콤해진다

씹으면 씹을수록 곱씹히는 당신

하루가 백년 같고 백년이 하루 같은

그 질겅질겅한 그리움 속에는

터질 듯 환하게 부풀다 꺼지는

한바탕 알싸한 슬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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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 두루봉동굴에서 ‘흥수아이’ 뼈가 발견되었지. 누군가 꺾어준 국화꽃을 안고 4만 년 동안 잠들어 있었지. 아무리 달콤한 말로 깨워도 일어나지 못했지. 그러나 은박지 관에 싸여 있던 당신은 입속에서 부드럽게 깨어났지. 수도사처럼 반듯한 당신, 한 번도 사랑받지 못했던 것처럼 단숨에 녹아버렸지. 자신과 춤춘 모든 파트너를 목젖 아리랑 고개로 밀어버리는 무서운 춤꾼 혓바닥과 춤추기 시작했지. 당신은 블루스와 탱고와 왈츠를 다 배우고도 절대 고개로 넘어가지 않았지. 천일 같은 한나절 동안 뻐근하게 춤추는 셰에라자드 같은 당신, 인생은 한바탕이라며 ‘푸우~ 뻥!’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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