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休] '기생충 계단' 에서 한걸음 두걸음…거리마다 예술인 숨결 켜켜이

■서울 종로구 부암동

북악산 계곡·바위 끼고 예부터 풍류 넘쳐

흥선대원군이 신하로부터 빼앗은 석파정

첫 100억대 작품 남긴 김환기 미술관 등

동네 갤러리 곳곳 개성 넘치는 작품 전시

정·재계 인사가 즐겨찾는 오랜 맛집도 눈길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달성하며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는 자하문터널 계단이라는 새로운 관광명소가 탄생했다. 영화 속 계단으로 재주목받지만 부암동은 예로부터 문화와 풍류가 넘치는 동네였다. 계곡과 바위가 만들어낸 수려한 풍경 위에는 조선 왕가가 사랑한 정원이 있고, 자하문로를 따라 동네 구석구석에 위치한 갤러리에는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정·재계 인사들이 즐겨 찾던 음식점도 많아 당일치기 여행코스로 제격이다.

영화 ‘기생충’ 촬영지인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하문터널 계단에서 관람객이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영화 ‘기생충’ 촬영지인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하문터널 계단에서 관람객이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기생충 촬영지를 보기 위해 부암동을 찾았다면 우선 자하문로 219로 가자. 폭우가 쏟아지는 밤,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박사장(이선균)의 집을 몰래 빠져나와 하염없이 아래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대목은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다. 촬영지인 자하문터널 계단은 최근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영화 속 장면과 같은 구도로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터널 건너편에 있는 인도에서 계단 쪽을 향해 촬영하면 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영화 속 분위기가 더 살겠지만 미끄러짐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흥선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을 방문한 관람객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흥선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을 방문한 관람객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흥선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별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흥선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별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기생충’으로 알려지기 전부터 부암동은 예술과 멋의 동네였다. 자하문터널 계단에서 촬영을 마치고 언덕을 따라 내려오면 흥선대원군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신하로부터 빼앗은 일화로 유명한 석파정이 있다. 석파정은 조선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의 별서로 얕은 계곡과 널찍한 바위가 한데 어우러져 당시에도 아름답기로 장안에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이를 탐낸 대원군은 임금이 지낸 곳에 신하가 머물 수 없는 성리학 규범을 이용해 김흥근에게 별서를 하루만 빌려달라 부탁하고 아들인 고종을 모시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석파정 서울미술관. 석파정을 관람하려면 미술관을 통해 입장해야한다.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석파정 서울미술관. 석파정을 관람하려면 미술관을 통해 입장해야한다.


김흥근은 결국 별서를 대원군에게 넘기게 되고 석파정은 대원군의 소유가 됐다고 한다. 지난 2012년 석파정 앞에 서울미술관이 개관했고 석파정도 미술관과 함께 유료로 개방되면서 일반 관람객들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조선 시대 문화재를 간직한 미술관은 전통적인 작품을 전시할 것 같지만 의외로 근현대 작품이 주를 이룬다. 입장료는 미술관과 석파정을 동시에 관람할 경우 1만1,000원이고 석파정만 관람할 때는 5,000원이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 미술관. 지난해 한국 미술품 최초로 경매가 100억원을 넘긴 김환기 작가를 기념하는 미술관으로 우규승 건축가가 설계했다.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 미술관. 지난해 한국 미술품 최초로 경매가 100억원을 넘긴 김환기 작가를 기념하는 미술관으로 우규승 건축가가 설계했다.


환기미술관 전경./사진제공=환기미술관환기미술관 전경./사진제공=환기미술관


석파정을 둘러봤다면 건널목을 지나 자하문로 40길 63 ‘환기 미술관’으로 올라가 보자.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받기 3개월 전, 한국 문화사에는 또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 미술품 최초로 경매가 100억원을 넘긴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홍콩에서 열린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된 ‘우주’의 화가 김환기도 부암동이 간직한 또 하나의 보물이다. 그의 아내 김향안 여사가 1992년 남편의 유품과 그림을 정리해 설립한 이 미술관은 소나무 등 한국적인 식물과 콘크리트 건물이 대조를 이루며 한국 건축가의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세계적인 미술관 건축을 소개한 ‘뮤지엄 아키텍처(1998)’에 소개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잠시 문을 닫아 오는 27일부터 재개관하며 3월 말까지 김환기의 일기가 전시된다. 입장료는 8,000원으로 전시마다 금액이 달라진다.

한양 4소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창의문(자하문). 양옆으로는 성곽길이 나 있어 부암동의 정취를 바라보며 산책하기 좋다.한양 4소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창의문(자하문). 양옆으로는 성곽길이 나 있어 부암동의 정취를 바라보며 산책하기 좋다.


미술관을 둘러본 뒤에는 청운공원 산책로로 이어지는 창의문을 보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사소문(小門) 중 온전히 옛 모습을 간직한 창의문은 양옆으로 길게 이어진 성곽길이 특히 아름답다. 북악산 방면과 반대편 언덕인 청운공원 양쪽 모두에서 성곽의 흔적을 볼 수 있으며 해 질 무렵 성곽길 아래로 보이는 서울 야경이 유명하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프라이드치킨으로 유명한 음식점 ‘계열사’.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프라이드치킨으로 유명한 음식점 ‘계열사’.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영국식 스콘으로 유명한 빵집 ‘스코프’.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영국식 스콘으로 유명한 빵집 ‘스코프’.


◇부암동 별미


골목상권이 살아 있는 부암동에는 터줏대감처럼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온 맛집이 즐비하다. 부암동 258-3에 위치한 ‘계열사’는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즐겨 찾은 치킨 맛집으로 유명하다. 찹쌀 물에 콩가루를 입혀 튀긴 프라이드치킨과 큼지막한 웨지 감자가 나와 부암동 투어 후 출출해진 빈 속을 든든하게 채울 수 있다. 웨지 감자와 함께 나오는 프라이드치킨의 가격은 2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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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맞은편에는 커피집 ‘클럽 에스프레소’가 있다. 부암동에서 2001년부터 영업하고 있는 이곳은 산지가 서로 다른 커피를 섞어 맛과 향을 한껏 살린 ‘블렌드’가 유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 시절부터 자주 찾은 커피 맛집이다. 문 대통령은 콜롬비아·브라질·에티오피아·과테말라 원두를 각각 4대3대2대1의 비율로 섞은 블랙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이와 같은 비율로 만들어진 ‘문 블렌드(6,000원)’를 맛볼 수 있다.

창의문을 지나 다시 자하문 터널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영국식 스콘으로 유명한 빵집 ‘스코프(SCOFF)’가 있다. 영국인 조너선 타운젠씨가 2014년 문을 연 이곳에서는 담백하면서 은은한 버터 향을 간직한 스콘을 한 손 가득 들어오는 큼직한 크기로 제공한다. 빵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미 이름난 이곳은 월요일과 화요일 휴무이며 버터 스콘의 가격은 3,300원이다.
/글·사진=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한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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