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소사] 그리스 내전…美, 세계경찰로

1947년 英, 미국에 도움 요청

미국의 지원으로 그리스 내전의 무게추는 국왕의 정부군 쪽으로 기울었다. 사진은 공산게릴라들의 거점을 포격하는 정부군 포병대. /위키피디아미국의 지원으로 그리스 내전의 무게추는 국왕의 정부군 쪽으로 기울었다. 사진은 공산게릴라들의 거점을 포격하는 정부군 포병대. /위키피디아



1947년 2월21일 영국 정부가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외교 각서를 보냈다. 골자는 바통 체인지. 내전이 격화하는 그리스에 대한 원조를 영국은 더 이상 제공할 여력이 없으니 미국이 대신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영국은 3월 말까지만 그리스왕국(정부군)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응답은 예상보다 빠르고 화끈하게 왔다.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3월12일 의회 연설을 통해 “무장한 소수 또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저항하는 자유국가 국민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의 구조 요청을 미국이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으로 화답한 1947년의 미영 외교는 단순한 협력 차원 이상이었다. 당시 국무부 차관이던 딘 에치슨은 회고록에 ‘미국은 몰락해가는 영국을 대신해 자유세계의 지도자가 되는 데 용감하게 나서야 한다. 역사의 전환점에 이르렀다’고 썼다. 미국은 바로 그리스에 무기와 돈을 퍼부었다. 다만 당시 그리스 상황은 트루먼의 강조점과는 약간 달랐다. 내전을 일으킨 공산당 계열은 사회주의 정권이 막 들어선 알바니아·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 등의 도움을 받았으나 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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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소수였던 국왕의 정부군을 지원해 결국 1949년 그리스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미국이 팔 걷고 나선 가장 큰 이유는 발칸반도 전체의 공산화 방지. 소련 세력이 그리스를 통해 지중해에 바로 들어오는 사태를 막으려 들었다. 다만 주도권을 유지하려던 영국과 새로 잡으려던 미국 간의 치열한 눈치 싸움이 있었다. 영국은 극동, 즉 중국과 일본에서 미국의 우위를 인정하는 반면 지중해에서의 패권은 유지하고 싶었다. 1946년 2월 2차 그리스 내전이 터져 4억6,000만달러를 퍼붓고도 공산군에 밀리자 미국을 끌어들였다.

영국이 유럽 지역에서도 미국에 기댄 이후 미국은 ‘세계의 경찰국가’로 떠올랐다. 한반도에 미친 영향도 지대하다. 베른트 슈퇴버 포츠담대 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전쟁’에서 ‘냉전기 최초의 열전인 한국전쟁’의 기원을 그리스 내전과 트루먼 독트린으로 간주한다. 미국은 유럽에는 남다른 공을 들였다. 그리스 내전의 주도권을 행사한 지 1년이 지난 후에는 ‘마셜 플랜’을 발표하며 유럽국가들에 대한 대규모 경제원조에 나섰다. 4년간 130억달러를 지원한 덕에 유럽 경제는 36%나 성장할 수 있었다. 문제는 오늘날이다. 대외원조는커녕 야박함으로 동맹국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2020년의 미국은 1947년의 미국이 아니라 동맹국들을 갈취하다 망한 BC 4세기의 아테네 꼴이니.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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