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사무·의료·보안제품 제조사인 스리엠(3M)의 중앙연구소에서 접착제를 연구하던 스펜서 실버 박사는 지난 1969년 어떤 물체에도 잘 붙지만 금방 떨어져 버리는 특이한 접착제 구조를 발견한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당시에는 실패한 연구 결과물이었다. 이후 1981년 출시돼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포스트 잇’에 사용된 접착 성분이 개발된 배경이다.
두 번의 노벨상을 받은 미국의 물리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은 유전물질인 DNA가 3중 나선으로 꼬여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1953년 2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틀린 논문이었으나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영감을 준다. DNA가 나선 형태라는 폴링 박사의 주장을 X선 회절법으로 검증하는 과정에서 3중이 아닌 2중의 나선임을 밝혀내 1962년 노벨상을 받는다. 폴링 박사의 논문은 여전히 철회되지 않고 있다. 두 사례는 실패하거나 잘못 해석된 연구 결과가 이후 연구 성과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우리나라의 연구과제 성공률은 99.5%에 이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율 4%를 넘는다. 그럼에도 2018년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 R&D 사업의 효율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28위에 머무르고 있다.
기후변화와 인구고령화·아프리카돼지열병 등으로 농업 분야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해부터 농촌진흥청에서 실증하고 있는 ‘고온극복 혁신형 스마트온실’과 사막에서 벼를 재배하려는 연구를 무모한 시도로 보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도전적 연구들의 시작은 농업현장에서 성공한 사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 60년 이상 농촌진흥청이 축적한 실패 경험과 노하우로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고위험 혁신연구를 장려하는 것이 국가적 책임이다. 미국은 2010년 ‘미국경쟁력강화법(America Competes Act)’을 제정하고 실패 가능성이 큰 혁신연구에 재정투입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 과학기술진흥기구(JST)는 2001년부터 ‘실패지식 데이터베이스(Failure Knowledge DB)’를 구축하고 최근까지 2만여건의 실패 사례들을 축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0년부터 연구의 성실 실패를 인정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실패한 연구자에게 부여한 페널티를 사후적으로 면해주는 정도다. 실패 가능성이 큰 도전적인 연구는 실패 여부를 묻지 않고 지속성을 확보해줘야 한다. 성실한 실패를 용인하는 것은 후속연구의 실패 가능성을 줄이고 보다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배양하는 좋은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