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저하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까지 받아 그야말로 ‘시계 제로’ 국면에 빠졌다. 앞날이 보이지 않을 때는 앞서 국정을 운영한 원로들에게 길을 물어야 한다. 서울경제는 1일 위기극복 경험을 가진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한국경제연구원장),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안민정책포럼 이사장), 백용호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화여대 교수),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김동수 전 공정거래위원장(고려대 미래성장연구소장) 등 경제 원로 6명에게 난국을 헤쳐나갈 제언을 들었다. ★관련기사 3면
전 이사장은 “경제가 냉각되고 있다. 재정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정부 정책 기조의 ‘리셋’이 필요하다”며 “지난 2년 동안 기업이 역동적으로 뛸 수 없도록 하는 정책들이 양산됐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주 적자국채 발행으로 슈퍼추경을 하는 것을 넘어 친시장·친기업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적재적소에 재정을 투입하는 핀셋 추경도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올해 한해만 때운다는 생각으로 추경을 해서는 안 된다. 소비성 지출보다는 투자성 지출에 나서야 한다”면서 “투자와 고용이 늘면 경기는 저절로 살아난다. 돈을 푸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기준금리 인하의 한계도 언급했다. 박 전 총재는 “지금 당장 금리를 내리는 것은 실효성이 낮다. 코로나 사태로 피해를 당한 자영업자와 기업들에 재정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지난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해 대책은 더 긴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도 같은 입장이다. 그는 “한국 경제가 엄중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번 기회에 제로베이스에서 정책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한번에 모두 추경을 풀지 말고 정책효과를 보면서 순차적인 추경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 건전성 악화로 한국의 대외 신인가 저하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권 원장은 “나라 곳간에 여유가 있다고 펑펑 쓰면 안 된다“며 “재정 투입에 과다하게 의존하게 되면 국가 전체적인 신뢰도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를 내다본 정책 제언도 눈에 띄었다. 권 원장은 “이번 사태를 보면서 역시 산업생태계가 튼튼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규제혁신·노동개혁·세제개혁 등에 나서야 한다”며 “우리 경제의 약한 체력이 드러난 만큼 정책 노선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조지원·황정원·한재영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