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공감]남한산성에도 기어이 봄은 왔다

“대감, 이 추운 성이 버티어낼 수 있을는지”…“버티지 못하면 어찌하겠느냐. 버티면 버티어지는 것이고, 버티지 않으면 버티어지지 못하는 것 아니냐…김상헌은 그 말을 아꼈다…죽음을 받아들이는 힘으로 삶을 열어나가는 것이다. 아침이 오고 또 봄이 오듯이 새로운 시간과 더불어 새로워지지 못한다면, 이 성안에서 세상은 끝날 것이고 끝나는 날까지 고통을 다 바쳐야 할 것이지만, 아침은 오고 봄은 기어이 오는 것이어서 성 밖에서 성안으로 들어왔듯 성안에서 성 밖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찌 없다 하겠느냐”…(김훈, ‘남한산성’, 2007년 학고재 펴냄)


사태의 근원은 다를지언정, 큰 재난으로 일상과 동선에 절대적인 제약이 생긴 요즘 상황은 병자호란을 다룬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을 떠올리게 한다. 물자는 부족하고 서민들은 불안과 공포를 가까스로 견디고 있는데, 어떤 말 잘하는 사람들은 증오와 혐오와 흑백논리를 부추긴다. 말로는 진짜 적과 싸울 수가 없고 당면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데, 말싸움만이 유일하고 중대한 싸움인 줄 아는 자가 넘쳐난다. 그러나 ‘남한산성’ 안에는 진짜 싸움을 벌이는 영웅도 있었다. 수어사 이시백은 “너는 어느 쪽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 무수한 말들에 휩쓸리지 않고, 방역망의 최전선에서 묵묵히 분투하고 있는 의료진과 실무자들은 어쩌면 코로나 시대의 이시백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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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남한산성’의 서두는 조정대신들의 공허한 논쟁으로 시작되지만, 결말에 이르면 서민 서날쇠가 봄밭에 거름을 뿌리고 아이들의 웃음을 가만히 바라보는 장면에 가닿는다. 2020년 대한민국의 봄, 재난으로 아이들의 개학이 늦춰지고 일상의 봄도 유예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밥 먹고 아름다운 것을 함께 보고 아이들이 와글와글 몰려나와 떠들고 웃는 당연한 자유를 되찾을 날이 부디 머지않았기를 빈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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