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글로벌 What] 난민 문제에 코로나까지...시험대 오른 유럽 ‘솅겐조약’

자유로운 이동 보장하며 ‘하나의 유럽’의 상징이었지만

난민 문제로 극우 포퓰리즘 횡행하며 국경통제 요구 커져

코로나19 확산되자 솅겐조약 파기 요구까지 나와

브렉시트로 위상 흔들리는 EU에 또 다른 시험대 될 듯

이탈리아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럽 전역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유럽연합(EU) 통합의 상징인 ‘솅겐조약’이 또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자유로운 역내 이동을 보장한 조약의 허점을 노린 난민들이 대규모 유입되며 EU 회원국들 간 갈등이 고조된데 이어 이번엔 코로나19가 빠르게 전파된 주범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에 따르면 6일(현지시간) 오전 8시 기준 유럽 27개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는 5,544명, 사망자 159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탈리아의 경우 확진자 3,858명, 사망자 148명으로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확진자 수는 중국·한국에 이어 세 번째, 사망자 수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유럽의 우한’, 세계 ‘슈퍼 전파국’으로 불릴 정도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확진자가 400명을 넘어섰고 스페인 261명, 영국 115명 등으로 뒤를 잇고 있다.


이에 ECDC는 지난 2일 EU 내 코로나19의 위험 수준을 기존 ‘보통’에서 ‘보통에서 높음’(moderate to high)으로 상향했다.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이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바이러스가 아주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방역 등에 필요한 대응팀 가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5일(현지시간) 밀라노의 유명 쇼핑 거리인 코르소 비토리오 에마뉴엘레의 인적이 완전히 끊어진 모습. /밀라노=AFP연합뉴스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5일(현지시간) 밀라노의 유명 쇼핑 거리인 코르소 비토리오 에마뉴엘레의 인적이 완전히 끊어진 모습. /밀라노=AFP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당장에라도 국경을 닫아야 한다는 강경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이전부터 난민 유입을 이유로 솅겐조약 폐기론을 주장해 온 유럽 내 극우 정치권이 앞장을 서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대표는 최근 공영 라디오 프랑스앵테르에 출연해 “EU는 이런 현실에서도 국경 개방을 마치 ‘종교’처럼 섬기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역시 최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유럽 대륙은 국경을 봉쇄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는데, 이는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탈리아 국경은 가능한 한 빨리 폐쇄돼야 한다”며 “100만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유입된 때(2016년)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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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내 코로나19 확산 현황 /ECDC 홈페이지 캡처유럽 내 코로나19 확산 현황 /ECDC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EU 집행부나 유럽 각국 정부들은 국경통제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표적인 이유는 국경폐쇄의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EU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유증상자의 국경 이동 금지가 오히려 질병 확산을 조장할 것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고 보도했다. 국경을 폐쇄할 경우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이 늘어나면 오히려 방역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는 설명이다.

국경 폐쇄로 자유로운 물자 이동이 막히면 경제적 타격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EU의 분열 양상이 드러난 마당에 EU 통합의 정신인 솅겐조약을 폐기할 경우 결속력을 해치는 또 다른 선례가 생길까 두려운 부분도 있다.

시리아 출신 난민들이 5일(현지시간) 터키 에디른에서 그리스로 향하기 위해 국경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에디른=EPA연합뉴스시리아 출신 난민들이 5일(현지시간) 터키 에디른에서 그리스로 향하기 위해 국경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에디른=EPA연합뉴스


설상가상으로 4년 전의 대규모 난민 사태가 재연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그리스에 접한 국경을 개방해 시리아 난민들의 유럽행을 열어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터키는 난민들을 수용하는 대가로 EU의 지원을 받기로 했지만 EU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이 같이 주장했다. 앞서 터키는 EU 가입 조건으로 난민들의 유럽행을 차단하고 터키에 수용하는 대신 EU로부터 60억유로의 지원을 받기로 하는 내용의 난민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노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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