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에 따르면 6일(현지시간) 오전 8시 기준 유럽 27개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는 5,544명, 사망자 159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탈리아의 경우 확진자 3,858명, 사망자 148명으로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확진자 수는 중국·한국에 이어 세 번째, 사망자 수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유럽의 우한’, 세계 ‘슈퍼 전파국’으로 불릴 정도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확진자가 400명을 넘어섰고 스페인 261명, 영국 115명 등으로 뒤를 잇고 있다.
이에 ECDC는 지난 2일 EU 내 코로나19의 위험 수준을 기존 ‘보통’에서 ‘보통에서 높음’(moderate to high)으로 상향했다.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이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바이러스가 아주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방역 등에 필요한 대응팀 가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당장에라도 국경을 닫아야 한다는 강경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이전부터 난민 유입을 이유로 솅겐조약 폐기론을 주장해 온 유럽 내 극우 정치권이 앞장을 서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대표는 최근 공영 라디오 프랑스앵테르에 출연해 “EU는 이런 현실에서도 국경 개방을 마치 ‘종교’처럼 섬기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역시 최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유럽 대륙은 국경을 봉쇄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는데, 이는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탈리아 국경은 가능한 한 빨리 폐쇄돼야 한다”며 “100만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유입된 때(2016년)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EU 집행부나 유럽 각국 정부들은 국경통제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표적인 이유는 국경폐쇄의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EU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유증상자의 국경 이동 금지가 오히려 질병 확산을 조장할 것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고 보도했다. 국경을 폐쇄할 경우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이 늘어나면 오히려 방역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는 설명이다.
국경 폐쇄로 자유로운 물자 이동이 막히면 경제적 타격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EU의 분열 양상이 드러난 마당에 EU 통합의 정신인 솅겐조약을 폐기할 경우 결속력을 해치는 또 다른 선례가 생길까 두려운 부분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4년 전의 대규모 난민 사태가 재연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그리스에 접한 국경을 개방해 시리아 난민들의 유럽행을 열어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터키는 난민들을 수용하는 대가로 EU의 지원을 받기로 했지만 EU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이 같이 주장했다. 앞서 터키는 EU 가입 조건으로 난민들의 유럽행을 차단하고 터키에 수용하는 대신 EU로부터 60억유로의 지원을 받기로 하는 내용의 난민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