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선정해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금융그룹 통합금융감독법’의 추진 방향에 관한 세미나가 올 초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금융그룹의 재무적 위험뿐 아니라 지배구조 같은 비재무적 위험도 세밀하게 살펴보겠다”며 “지난 2018년 7월부터 모범규준 형태로 시범 운영돼온 금융그룹 관리체계를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올 상반기 중 개정을 마칠 방침이라고 했다.
통합금융감독 대상은 여수신·보험·금융투자업 중 2개 이상 금융회사가 포함된 기업집단과 금융자산 5조원 이상의 복합금융그룹으로 삼성·한화·미래에셋·교보·현대차·DB 6곳이 선정됐다. 금융위험이 특정 분야에 과도하게 노출된 집중위험과 그룹 내 계열사의 위험이 금융 부문에 전이되는 전이위험에 대한 감독을 통해 금융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금융회사가 비금융회사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자본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엄격한 금산분리다. 한국에서는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소유하지 못하게 함은 물론 금융회사도 비금융회사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철저한 금산분리가 적용되고 있다. 세계는 융복합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핀테크와 테크핀의 금산융합으로 가는데 한국은 시대착오적인 엄격한 금산분리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삼성전자 지분을 8% 내외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이 주요 타깃이다. 시가로 약 25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지분이 자본금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삼성생명의 자본금이 급감하게 된다. 설상가상 보험회사는 오는 2022년부터 시행될 신회계제도(IFRS17)에 대비해 자본금을 더 쌓아야 한다. 종래 장부가로 평가해오던 부채를 시가로 평가해야 하는데 고금리 시절 발행했던 채권이 저금리인 지금 시가로 평가하면 발행한 채권의 가격이 급등해 부채액이 크게 증가하게 돼 보험회사를 평가하는 기준인 지급여력(RBC)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지급여력(RBC)을 150%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기준을 적용하면 업계 최고의 지급여력을 가진 삼성생명도 5조원 이상의 추가 자본확충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에 통합금융감독제도 도입으로 삼성전자에 투자한 지분을 자본금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은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해오고 있는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크게 약화될 우려가 있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직접지분은 5% 내외에 불과해 대주주인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해오고 있는데 삼성생명을 통한 지배력이 사라지면 그만큼 삼성전자의 지배력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이 회장 사후에 이재용 부회장이 상속을 받는 경우 상속세도 60% 내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57%에 달하고 있다. 대주주의 지배력이 약화되면 이 틈을 2015년 엘리엇처럼 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파고들 가능성이 크다. 이미 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이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는 가운데 순환출자 해소, 상법개정,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코드십 도입에 이어 통합금융감독제도 도입까지 기업의 지배구조를 뒤흔들 메가톤급 조치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투자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기업이 얼마나 될 것인가. 특히 통합금융감독이 법안 통과도 안 된 상황에서 모범규준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미리 만들어 무리하게 강행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보험회사에 대해서는 신회계제도 도입,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는 비금융회사 지분을 10% 이상 가질 수 없도록 한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보험사는 계열사 채권·주식을 자산의 3% 이하로만 가질 수 있도록 한 ‘3%룰’로 불리는 보험업법 등 금융안정을 위한 조치들이 겹겹이 있다. 옥상옥의 규제보다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중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