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임신 4개월 차 조혜선(32·가명)씨는 최근 동생의 외출 문제로 가족 간 불화를 겪었다. 친정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지난 7일 부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된 임산부 사례가 발견되며 가족들이 동생에게 외출하지 말라고 하자 다툼이 생겼기 때문이다.
# 취업준비생 이진수(28·가명)씨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업들이 연이어 공채를 연기하면서 취업 불안감이 높아지자 끊었던 담배도 2주 전부터 다시 피우고 있다. 이씨는 “사태가 잠잠해지면 올 하반기에 공채가 대거 풀릴 것이라는 희망만 붙들고 있다”며 “확진자가 나왔다는 지방자치단체 경보 문자를 받으면 다시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다. 기사를 찾아보다 새벽 늦게 잠들곤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코로나 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우울함과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코로나 블루(코로나19와 우울을 합성한 신조어)’를 겪는 사람들이 증가하자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예방 못지않게 ‘심리적 방역’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10일 심리치료기관인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지난 1월29일부터 이달 9일 오전9시까지 코로나19와 관련된 심리상담 건수는 자가격리자와 일반인 3만399건, 확진자와 가족 4,419건 등 총 3만4,818건에 달했다. 2019년 강원도 산불 당시 비슷한 기간 동안 총 1,000여건의 상담이 이뤄졌던 것과 비교하면 코로나19로 인한 국민들의 정신적 고통이 어느 정도로 강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센터는 국가적인 대형 재난을 당한 피해자의 심리 치료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설립한 기관이다.
재택근무와 개학 시점이 연장되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재택근무 중인 장철민(28·가명)씨는 “평소 동료들과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집에만 있으니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다”며 “밖에 나가고 싶어도 혹시 감염되면 동선이 다 공개되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주요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늘어난 가사에 지쳐간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아홉 살 배기와 여섯 살 배기를 키우고 있는 이윤희(가명)씨도 “학원도 휴원이고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 감금된 기분”이라며 “한주만 더 버티자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울감을 넘어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의 비중도 늘어났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25~28일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1월31일∼2월4일(1차조사) 당시 코로나19 관련 뉴스를 접했을 때 6.8%만 분노를 느꼈으나 2차 조사에서는 분노가 21.6%로 대폭 올랐다. 경기도 성남의 한 약국에서 근무 중인 강민석(32·가명)씨는 “쏟아지는 마스크 민원을 응대하느라 며칠째 쉰 목이 낫지 않고 있다”며 “도매상에서 마스크를 구하는 일은 전부터 어려웠고 공적 마스크도 당일에야 몇 개가 들어오는지 알 수 있는데 숨겨놓는 것은 아니냐고 화를 내는 손님들도 많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잘못된 정보를 멀리하고 현재 할 수 있는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도움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가짜뉴스로 불안장애를 앓던 분들이 증상이 악화돼 방문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잠시 멈추고 가족·친지에게 안부 전화를 걸거나 함께 기부활동에 참여하는 등 친밀감을 높이는 것이 도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한 사람들의 경우 적절한 예방조치 뒤에 사람이 적은 곳에서 산책을 즐기는 것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대인관계를 통해 들어오던 자극이 줄어들면서 우울·불안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책 읽기 등 그동안 하지 못했던 취미를 만드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