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급락으로 ‘러시아·브라질 펀드’가 고꾸라지고 있다. 주요 산유국으로 꼽히는 러시아·브라질 증시는 지난해 정부의 재정개혁과 유동성 공급 등에 힘입어 강세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에 산유국 간 ‘치킨게임’으로 국제유가가 수직 낙하하자 펀드 수익률이 큰 폭으로 주저앉았다. 특히 브라질의 경우 현지 통화 약세마저 겹쳐 손실이 더 커지고 있어 비상이 걸렸다.
10일 증권가에 따르면 브라질 보베스파지수는 9일(현지시간) 8만6,067.20로 마감하면서 전일보다 12.17% 폭락했다. 같은 날 러시아 시장은 여성의 날로 휴장했지만 지난 6일 전일 대비 4.97% 하락한 1,258.96으로 장을 마쳤다. 이 같은 하락에 브라질과 러시아 시장 지수는 올해 각각 25.6%, 18.8% 하락했다. 이는 신흥국 시장 지수인 ‘MSCI EM지수’의 올해 하락폭(-9%)보다 큰 수치다.
이들 시장의 침체는 코로나19의 발병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새로운 전염병의 확산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신흥국 시장에 대한 투자심리가 쪼그라들자 브라질과 러시아의 1차 충격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국제유가 급락은 이들 펀드 수익률을 끌어내리는 결정적 원인으로 꼽힌다. 러시아 시장은 시가총액의 약 60%를 에너지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브라질 역시 남미 시장에서 주요 산유국으로 꼽히며 원자재 동향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원자재 시장이 주춤하는 사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유가 전쟁 조짐으로 국제유가가 폭락하자 악재를 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브라질의 경우 현지 통화 약세도 투자자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달러 대비 헤알화 환율은 올해 초 4.02헤알에서 최근 4.7헤알을 넘을 정도 약세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브라질과 러시아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 수익률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날 기준 브라질 펀드의 올해 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23.22%를 기록했다. 이는 해외 주식형 펀드를 투자 지역별로 분류할 때 가장 저조한 성과다. 러시아 펀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연초 이후 -16.73%, 1개월 수익률 -17.68%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와 브라질은 해외 주식형 펀드 수익률 1위와 3위를 기록했지만 최근 정반대의 모습이 이어지는 것이다.
투자자금도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 총 설정액이 2,224억원 수준인 러시아 펀드의 경우 연초 이후 121억원이 빠져나갔고 총 설정액 772억원인 브라질 펀드에서는 68억원이 유출됐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우선 국제유가 반등에 대한 기대가 점점 줄어드는 분위기다. 증권가에서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 배럴당 20달러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관측이 조금씩 제기된다. WTI의 9일 종가가 배럴당 31.13달러 수준인데 여기서 하락할 여지가 더 있다는 뜻이다 . 게다가 브라질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것으로 예상돼 통화 약세 압력은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 역시 현지 통화 약세 압력이 강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이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러시아와 브라질은 산유국들 간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가 큰 변수”라면서 “국제유가 압박과 헤알화 약세 등으로 적어도 3월은 시장의 큰 반등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