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한일, 소모적 갈등 접고 '코로나방역'부터 손잡아야

■글로벌 퍼펙트스톰 무엇을 대비해야 하나<중>한일관계 정상화

"日 밉지만 교류단절 땐 韓피해 커 한중일 방역협력 先제안 필요"

국제공조 큰 화두 들고 먼저 손내미는 자세 가져야

정치적 코너몰린 아베 '협상의 장' 끌어낼 명분 제공

방역 합의 땐 코로나 위기 극복할 모멘텀 될수도




한일관계가 지난해 ‘수출규제-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갈등에 이어 최근 입국제한 조치까지 겹치면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중국 등 일부 지역에서 중동·유럽·미주까지 잇따라 퍼지며 팬데믹(대유행) 현상으로 번지는 가운데 한일관계 악화까지 우리 경제를 무겁게 짓누르는 모양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방역 문제를 정치·외교적 이슈로 끌고 나오더라도 우리까지 똑같이 정치적으로 맞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보다는 방역협력을 시작으로 도쿄올림픽 이슈 등을 활용해 산적한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실리외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아도 글로벌 퍼펙트스톰의 한복판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이 판국에 불필요한 외교갈등까지 떠안을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서경펠로(자문단)들은 11일 기존 일본의 수출규제에 한일 양국의 인적교류까지 끊기게 되면서 한국이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코로나19를 명분으로 앞세워 일종의 정치적 자존심 싸움이 된 한일 양국의 입국제한 조치가 국익 측면에서는 뼈아픈 충격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진단이 우세했다.


각종 스캔들과 코로나19 대응 미숙으로 정치적 수세에 몰린 아베 총리의 한중 입국제한 조치에 우리까지 맞불을 놓으면서 대일(對日) 경제교류의 마지막 남은 끈까지 자른 꼴이 됐다는 분석이다. 대내외적으로 한국 정부까지 정치적 고려를 했다는 인상을 준 것도 물론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은 한국 입장에서 세번째 수입국이자 다섯번째 수출국인데 가공무역이 많은 경제구조의 특성상 수입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매우 클 것”이라며 “수출의존도가 작은 일본은 관광객 감소 정도의 충격이겠지만 한국의 타격은 차원이 다른 만큼 서둘러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경제산업성 국장급 인사들은 10일 오전10시부터 11일 오전1시50분까지 무려 16시간 동안 영상회의 형태로 제8차 한일 수출관리정책대화를 진행했지만 사실상 아무 소득도 얻지 못했다. 이 회의의 핵심은 지난해 이후 이어진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규제와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였으나 결론은 또다시 다음 회의로 미뤄졌다. 기존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에 더해 최근 상호 입국제한 조치가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1,000만명이 교류하다 5명이 오가는 시대가 됐으니 의미 있는 싸움인가 싶다”며 “산업현장에 없는 사람은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오늘날 경제가 세계적으로 다 묶인 상황에 산업계 기술인력, 무역 쪽에 필요한 최소 인력, 교환학생·유학생 등이 왕래를 다 포기하면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본다”고 꼬집었다.


펠로들은 서로 출입문을 걸어잠글 것이 아니라 방역협력부터 전향적으로 물꼬를 터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적으로 초조한 상태인 아베 총리에게 코로나19의 국내 확산이 진정 추세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명분으로 제공해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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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일본이 코로나19 검사를 충실히 하지 않은 점과 일본의 제한조치가 합리적이지 않은 점은 사실로 보인다”며 “하지만 한국 정부의 감정적 맞대응 역시 일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인지, 우리 국민들한테 ‘일본은 나쁘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판단이 잘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의 조치는 밉지만 국가 전략은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한다”며 “‘국내 확진자 증가세가 조금씩 둔화하는 만큼 입국제한 조치를 조기에 종료해달라’는 식으로 일본과 대화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권했다.

특히 방역 문제에 있어서는 한일관계를 넘어 중국을 포함해 대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전략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아베 총리가 그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에 목을 매온 만큼 한중일이라는 삼각관계 차원에서 접근할 때 일본과의 관계 회복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는 시각이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코로나19 이후에도 감염병 문제가 계속 있을 수 있으니 한중일 세 나라가 전염병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모멘텀이 되지 않을까 한다”며 “시간이 지체될수록 (관계 회복이) 어려워지고 국민들의 감정의 골도 깊어지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불안해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우선 안심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창수 수석연구위원은 “우리가 먼저 신규 확진자 수가 떨어지면 올림픽을 앞둔 일본 입장에서는 제한을 풀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때 한국도 규제를 풀면서 ‘방역 문제만큼은 한중일 협력이라는 큰 틀에서 집중하자’며 어른스러운 태도로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제징용 판결과 수출규제 등 근본적으로 누적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분기점은 역시 도쿄올림픽으로 지목됐다. 도쿄올림픽 성패에 따라 아베 내각의 정치적 향방도 달라질 공산이 커 여기에 주목한 외교전략을 짜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 내 코로나19 확산이 4월까지 진정되지 않으면 올림픽도 연기해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아베 정권이 흔들릴 텐데 이 경우 일본 측도 한일갈등에 대응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최악의 경우 상반기에 강제징용 피해 원고들의 일본 기업 자산 매각명령이라도 나오면 타협의 여지도 없어진다”며 “일본이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나올 경우 우리가 또 말려들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본과 갈등 해결 이후 상호 협력할 수 있는 부분으로는 최근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출렁이는 점을 감안해 통화스와프 등이 주로 꼽혔다. 한국은 일본과 2001년 7월 20억달러 규모의 첫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뒤 2008년 300억달러, 2011년 700억달러까지 증액했다. 하지만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2015년 2월 스와프는 종료됐다. 미국·일본 등과의 통화스와프는 금융위기 당시 외화유출을 막아 위기 극복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양기웅 한림대 글로벌협력대학원장은 “통화스와프는 다다익선으로 일본과 협정을 체결하면 대단히 중요한 자산이 된다”며 “통화스와프는 경제협력의 하이라이트 같은 것이기 때문에 양국관계가 좋아져 통화사업을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하는 게 좋다”고 평가했다.


윤경환·박우인·김인엽·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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