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 "문 닫고 있어도 미술관은 분주합니다"

22년 낙후된 시설들 리모델링

전시보고 쉬며 배우는 공간으로 변신

부산작가 아카이브센터 구축 목표

이우환의 2015년작 ‘대화’ 앞에 선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이우환의 2015년작 ‘대화’ 앞에 선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



“코로나 여파로 미술관은 잠정 휴관이지만, 문 닫고 있는 동안에도 미술관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다시 여는 날, 더 나은 모습으로 만나겠습니다.”

지난 달 14일 취임 100일을 맞은 기혜경(56·사진) 부산시립미술관장을 인터뷰할 때만 해도 부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청정지역’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후 첫 확진자가 발생한 뒤로 상황은 순식간에 악화했고 급기야 미술관은 23일부터 휴관에 돌입했다.

“좋은 전시로 관객과 만나고 싶지만 미술관은 전시 뿐만 아니라 교육과 연구 기능도 중요합니다. 부임하는 관장의 취향에 맞춰 전시나 운영이 들쑥날쑥한 미술관이 아니라 미술관이 자체적으로 효율적,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필요해 여전히 바쁘네요.”


식당에 빗대자면 음식 맛은 기본이요, 균형 잡힌 영양과 바른 식습관까지 추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주방장이 바뀌더라도 주방 시스템은 음식 수준을 균질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비유에는 ‘식당의 주인은 손님’, 즉 ‘관람객과 시민이 미술관의 주인’이라는 뜻이 깔려 있다. 그래서 기 관장이 중점을 두는 일은 두 가지, 미술관 리모델링과 아카이브센터 구축이다. “전 세계 주요미술관들의 리노베이션 추세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에, 원하는 것이 바뀐 관람객의 수요에 부응하는 일이죠. 부산시립미술관은 경계를 넘어선 공간, 시간을 넘어선 지속성, 기대를 넘어선 경험이 가능하게 바뀌어야 합니다”



이우환의 2015년작 ‘대화’ 앞에 선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이우환의 2015년작 ‘대화’ 앞에 선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


부산시립미술관은 지난 2016년 이중섭, 2017년 유영국 전시를 개최하면서 전시장의 항온·항습을 맞추는 기능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 체면을 구긴 바 있다. 지어진 지 22년이 지나 낙후된 시설의 개선은 필수다. 덧붙여 기 관장은 “모마(MoMA)가 지난해 5개월이나 문을 닫고 리노베이션 해 휴게시설을 25%나 늘리는 등 미술관들이 휴식공간을 중시하는 것은 ‘전시를 통해 가르치는(teaching) 공간’이던 기존 방식에서 ‘전시를 보고 쉬면서 스스로 배우는(learning) 공간’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보여준다”면서 “본관 1층은 휴게시설 확충과 카페·아트숍 등을 둔 곳으로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미 뉴욕 모마와 런던 테이트미술관, 파리 루브르박물관과 암스테르담의 스테델릭 미술관 등의 사례를 연구해 둔 터다. 지하 어린이미술관의 교육 특화, 요즘 전시 경향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3층 공간 개선도 계획 중이다.

또 하나는 “구슬이 서 말이지만 아직 꿰어지지 않은 부산 지역 작가 연구를 위한” 아카이브 센터의 구축이다. 기 관장은 “대구는 실험·개념미술, 광주는 한국화 등 지역성을 대표하는 계보가 있는데 부산을 ‘형상미술’이라고 하기엔 담고 있는 내용이 훨씬 풍부하다”면서 “이를테면 삶을 대하는 태도로서의 ‘생활주의 리얼리즘’은 부산이 가진 해양성과도 연동되는데 이런 것들을 연구해 ‘부산성’이 어떻게 미술에 반영됐는지 재정의하고 프로모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출신 작가 개인을 부각하기 보다는 한국미술의 큰 맥락에서 함께 살펴야 그 의미와 가치가 커지기 때문이다. “부산의 작가들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그간 확보한 기증작 연구, 축적된 아카이브 연구 등을 병행할 수 있는 아카이브센터가 필요한” 이유다. 규모가 큰 공공미술관은 전시 못지 않게 소장품 관리, 연구기획, 출판, 교육 등의 역할을 중시한다. 미국 게티미술관의 경우, 쟁쟁한 소장품 뿐 아니라 체계적인 아카이브 관리로 많은 이용객이 찾는 곳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이 같은 비전을 관장 혼자 실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산시의 예산지원이 절실하다.

“관장으로서 티 나는 일을 하자면 화려하게 해외전시 유치해 눈길 끌면 쉽고 편합니다. 미술관의 토대를 다지는 일은 드러나지 않기에 더 힘써야 하는 일이죠. 부산은 대안공간이나 신생공간 등 도시 규모에 비해 미술 인프라가 부족하지만 ‘영화의 도시’이고 ‘한국의 마이애미’가 될 잠재력도 무궁무진합니다”
/부산=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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