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 글로벌 복합위기를 계기로 한국 산업의 구조를 고도화하고 글로벌 공급망(GVC)도 미국·중국 등에서 벗어나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국 경제를 견인했던 반도체·철강·자동차·조선 등의 분야에서 중국과 신흥국들이 바짝 뒤쫓아오거나 일부 품목의 경우 추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체질개선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동안 유지돼온 한국과 중국·일본 간 분업구조가 해체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혁신적인 서비스업을 창출하고 창의적인 지식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주력 제조업은 초격차 전략을 세우고 △미국과 중국에 치우친 글로벌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신성장 등 4차 산업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규제를 양산하는 법안에 대해서는 정비가 시급하다고 제언한다. 기존 제조업은 초격차 전략에 나서는 한편 신성장 분야를 육성해 ‘산업 크레비스’를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코로나19의 영향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번 기회에 우리 산업과 기업들의 대응방안도 수정이 불가피하다”며 “그간 효율이 낮고 낙후됐던 분야에 혁신기술을 입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각종 규제로 지지부진했던 융복합 산업을 키워 산업구조를 고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신흥국 부상에 산업 경쟁력 흔들=국내 산업은 여전히 기술보다는 생산비 중심 구조로 짜여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제조 산업 중 생산비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이 무역수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로 집계됐다. 반면 기술 비교우위 산업의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글로벌 수요가 침체된 가운데 신흥국이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물량을 쏟아내면 시장점유율이 급속히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산업구조다.
설상가상으로 기술 비교우위 산업의 지위도 흔들리는 판국이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 강자의 맹렬한 추격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 정부는 가공무역 대신 산업구조 고도화를 통한 산업발전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 낮은 수준의 기술군 산업 수출 비중은 지난 2000년 38.4%에서 2017년 19.2%로 하락한 반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비중은 같은 기간 16.0%에서 26.7%로 높아졌다. 여기에 중국 정부는 ‘중국 제조 2025’를 내놓고 산업구조를 반도체·로봇·자율주행차 등 하이테크 제조업으로 바꿔보겠다며 산업구조 전환에 속도를 더 붙이고 있다.
신현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정부가 오는 2025년까지 핵심부품 70% 자립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산업 육성이 성과를 거둘 경우 향후 비메모리뿐 아니라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도 한중 간 경합관계가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 고도화로 글로벌 시장점유율 높여야=신흥국의 맹렬한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산업 고도화와 함께 서비스 산업 육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술 중심 산업에서 비교우위 품목을 확대하는 한편 자동화 기술 등을 적극 도입해 생산비 절감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창의적인 신산업 발굴과 함께 기존 산업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하는 현실적인 산업육성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기업이 나설 수 있게끔 정부의 적극적인 독려책이 필요하다. 주력업종의 고전이 ‘실적 악화→투자 감소→신산업과 융합 미흡→차세대 산업 진출 봉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부처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코로나19 사태를 타개할 ‘특단의 대책’을 주문할 때 몇몇 부처에서 확실한 친기업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감세나 규제 완화 같은 대담한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기업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희철 국제무역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서비스를 수출의 새로운 고부가가치 성장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면서 “차세대 통신기술 등과 결합된 의료·교통(모빌리티)·공유경제 등 새로운 서비스 산업을 마음껏 창출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남방 등 시장 다변화=중국 시장에 대한 철저한 대비와 함께 시장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신남방국가뿐 아니라 독립국가연합(CIS)·동유럽 등으로까지 시장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2012년 센카쿠열도 사태로 홍역을 치렀던 일본도 이른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으로 생산거점을 동남아시아 등지로 대거 옮긴 바 있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2008년 위기는 금융 분야에서 거품이 붕괴한 것이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글로벌 공급망 체인이 무너지는 등 실물 분야에서 구멍이 생긴 것”이라며 “중국은 우리 수출의 25%, 수입의 20%를 차지한다. 중국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수출시장 다변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경기회복에 대비해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무작정 계열사를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분야에 대한 공격적인 인수합병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일단은 코로나19의 충격 속에 기업 경영을 정상화하는 게 먼저”라면서도 “이번 위기를 통해 새롭게 떠오르는 사업 분야에 대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고 시장에 나온 알짜 기업을 M&A하는 등 공격적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세종=김우보기자 이재용·변수연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