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스트’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욘사마’ 배용준이 대표로 있던 배우 매니지먼트사를 떠올리고는 한다. 하지만 키이스트는 지난 2018년 3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에 인수된 후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 새로운 회사로 재탄생했다. 지금의 키이스트는 배우 매니지먼트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드라마, 영화, 디지털 콘텐츠 등 제작에 집중하는 종합 콘텐츠 제작사다. SM 계열사에 분포됐던 드라마 제작 파트를 모두 통합한 키이스트는 지난해 3편의 드라마를 제작한 데 이어 올해는 8개 작품을 시청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K팝 드라마, 학원물 드라마, 영화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2018년 11월 취임해 키이스트의 콘텐츠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성혜 키이스트 대표를 최근 강남구 키이스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 대표는 “취임 후 준비했던 것들이 하나씩 마련돼 올해와 내년에는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이 됐다”며 “이를 위해 정신없이 달려왔던 1년이었던 거 같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박 대표는 1990년대 초반 배우 김혜수의 매니저로 시작해 황정민·임수정·공효진·하정우·공유 등을 발굴하며 연예계에서 ‘스타 매니저’로 불렸다. 연예기획사 ‘싸이더스HQ’의 창립 멤버로 ‘최고, 최대의 엔터 기업’이라고 불렸던 싸이더스의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38세의 나이에 건강상의 문제 등을 이유로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그가 눈을 돌린 것은 드라마 등 콘텐츠 제작이었다. 2012년 드라마 제작사 ‘오보이프로젝트’를 설립했으며 이후 2016년에는 KBS와 KBS 계열사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제작사 ‘몬스터유니온’ 대표를 역임한 후 키이스트에 자리를 잡았다.
올해 키이스트는 현재 방영 중인 SBS ‘하이에나’를 시작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 MBN ‘나의 위험한 아내’, MBC ‘네 이웃의 속삭임’, JTBC ‘허쉬’ 등을 줄줄이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허쉬’는 주로 스크린에서만 볼 수 있던 배우 황정민이 8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하는 작품으로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포문을 연 드라마 ‘하이에나’는 김혜수·주지훈이라는 두 배우의 힘과 탄탄한 시나리오로 첫 방송부터 두자릿수 시청률을 이어가며 호평받고 있다. 박 대표는 “‘하이에나’는 키이스트가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보통 드라마를 방영하는 방송국이 드라마의 IP를 소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이에나’는 키이스트가 직접 제작해 SBS와 넷플릭스에 방영권을 판매한 것이다. 제작사가 직접 드라마를 제작하면 금전적으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지만 그만큼 작품에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박 대표는 “‘하이에나’에 출연한 배우들이 좋은 드라마 현장이었다고 말해준 것 역시 행복했다”며 “주지훈 배우는 촬영 분량이 다 끝나고 ‘15년간 했던 드라마 현장 중에서 가장 좋았다’고 말했고 첫 매니저로 인연을 맺었던 김혜수 배우 역시 ‘이렇게 잘 굴러가는 드라마 현장은 처음 봤다’고 말해줬는데 너무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 그럴 때 제작자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시청률이 잘 나올 때도 물론 행복하지만 경쟁적인 수치가 아니라 정성적인 지점에서 더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올해 작품 라인업도 탄탄하지만 키이스트는 내년 이후의 작품 구상에도 여념이 없다. 올해 촬영을 시작해 내년 방영을 목표로 넷플릭스와 협의 중인 K팝 드라마 ‘일루미네이션’은 기대작 가운데 하나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쓴 정세랑 작가가 6부작으로 집필 중이다.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인 만큼 SM 소속 아티스트가 출연하며 실제 K팝을 만드는 제작자들도 출연할 예정이다.
“K팝이 세계적인 인기가 있는 비결은 뭘까 생각해봤는데 ‘보는 음악’이라는 정의가 나오더라고요. 눈으로 즐기는 음악과 한국 드라마가 가진 힘을 합쳐 하나의 콘텐츠를 만든다면 충분히 해외시장에서 성공하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 보이그룹이 어떻게 해서 K팝 가수가 되는지, 이들이 성장해나가면서 겪는 사랑과 성장통 이야기를 담을 예정입니다. 단순한 아이돌 드라마가 아니라 정말 잘 만든, 웰메이드 드라마의 정수를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연플리’ ‘에이틴’ 등 웹드라마를 성공시킨 플레이리스트와 손잡고 오는 9월 새로운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으며 영화 제작 부문 강화에도 나섰다.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엔터테인먼트에서 영화 투자업무를 담당했던 이재필 전 ‘스튜디오썸머’ 대표를 영입, 영화 ‘극한직업’ 제작사인 어바웃필름과 두 편의 작품을 공동제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또한 ‘증인’ ‘청년경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제작사인 무비락과도 영화 두 편의 공동제작이 예정돼 있다.
박 대표는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시장 전체의 흐름에 대한 인사이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대중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찾고 픽업하는 것이 프로듀서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 ‘오보이프로젝트’를 설립했을 때는 재밌는 마음으로 당시 인기였던 ‘꽃미남’ 콘텐츠를 주로 선보였지만 이제는 다양한 작품의 총괄프로듀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시장의 흐름을 반보 내지는 한 보 앞서서 바라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기에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의 이슈는 물론 사회가 돌아가는 전반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또 미디어 플랫폼 변화에 맞춰 유튜브 등 디지털 콘텐츠도 눈여겨보고 있다.
그가 말하는 지금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지속 가능한(sustainable)’이다. 이는 환경이나 패션 분야 등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콘텐츠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박 대표는 “‘지속 가능한 콘텐츠’는 영화나 드라마 구분 없이 공통된 유니버스(세계관)를 가지고 웹소설·웹툰·드라마·영화·게임까지 지속 가능한 소비를 할 수 있는 하나의 IP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드라마 하나로만 휘발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소비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그런 IP를 여러 개 확보한 회사가 향후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최근 한국 드라마 트렌드에 대해서는 “이전에는 어떤 스타 배우가 출연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했다면 이제는 단순히 인기 스타가 나오거나 인기 작가가 썼다는 이유만으로 시청률이 좌우되지 않는다”며 “탄탄한 구성과 스토리를 자랑하는 웰메이드 작품이라는 점이 더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신인 작가의 작품이 호평을 받는 경우가 늘었다.
박 대표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콘텐츠 업계에서 내실 있는 회사로 입지를 단단하게 구축해 확실히 신뢰가 가는 회사,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 바람”이라고 밝혔다. 그는 “엔터 업계에 25년 가까이 몸담으면서 엔터 상장사들의 ‘거품’을 적잖이 목격했다”며 “‘누구를 영입하고, 어떤 회사를 인수하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판타지적인 기대 심리로 주가가 올라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이 과연 진정한 콘텐츠 회사의 가치로 평가받는 것인지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키이스트는 어떤 판타지나 기대 심리만이 아닌 팩트에 기반해 평가받는 내실 있는 기업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공룡들과의 경쟁에서 ‘키이스트’ 하면 떠오르는 정체성, 우리만의 색깔을 가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입니다. ”
사진=권욱기자
◇She Is… △1970년 서울 △1994년 명지대 영어학과 졸업 △1993~1999년 스타써치 입사 후 김혜수 등 매니저로 활동 △1999~2008년 싸이더스HQ 콘텐츠본부 본부장 △2004~2007년 홍익대 대학원 광고홍보학과 석사 △2012년 드라마 제작사 ‘오보이 프로젝트’ 설립 △2016년 콘텐츠 제작사 ‘몬스터 유니온’ 대표 △2018년~ 키이스트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