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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컬처] 매일 오후 6시 '그 목소리'가...'배칸트'의 30년 라디오 산책

■국내 최장수 라디오 DJ 배 철 수

80년대 대표 록밴드로 전성기 누렸지만

"즐거웠던 음악이 일처럼 느껴져 싫었다"

친한 PD 제안으로 1990년 라디오 시작

지쳐있던 뮤지션 활동에 또다른 즐거움

규칙적 생활에 한번도 지각 안하고 방송

TV '콘서트 7080'이어 토크쇼까지 맡아

"귀엽게 못될지언정 고약한 노인 안돼야"

배철수의 음악캠프. /사진제공=MBC배철수의 음악캠프. /사진제공=MBC




배철수. /사진제공=MBC배철수. /사진제공=MBC


대한민국에서 온 국민이 모두 아는 단 한 명의 목소리가 있다면 그 주인공은 배철수(67)일 확률이 높다. 매일 오후 6시, 롤링스톤스의 곡을 변주한 ‘새티스팩션(Satisfaction)’의 경쾌한 오프닝 시그널곡에 이어 힘들이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배철수 특유의 내레이션이 라디오 청취자들의 저녁을 연 지 30년. 지난 1990년 3월 19일 첫 방송을 시작한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이하 배캠)이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국내 최장수 팝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답게 기록이 한둘이 아니다. 24년째 최장수 게스트(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단일 프로그램 최장수 작가(김경옥), 국내 라디오 역사상 최다 해외 아티스트 출연(280팀)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들이 배캠의 역사를 장식해 왔다. 하지만 배캠의 가장 큰 기록은 단연 주인공인 배철수다. 30년 간 한결같은 목소리와 변치않은 팝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청취자들을 만나 온 배철수는 어느덧 한국 라디오 DJ의 대명사이자 팝 음악의 산 역사가 됐다.

배철수는 19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배캠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엊그제 시작한 거 같은데 벌써 30년이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매일매일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데, 30년이 됐다고 축하를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배캠 20주년, 25주년에도 배철수는 ‘방송을 너무 오래한 것 같다’고 말해왔지만 “이제 내 의지로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니라, 청취자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만두는 날까지 재미있게 계속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젊은 세대에게는 라디오 DJ나 MC로 친숙한 배철수의 시작은 뮤지션이었다. 한국항공대학교 록밴드 ‘활주로’로 활동했던 그는 1978년 제1회 TBC 해변가요제와 같은 해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하며 당대 최고의 음반사였던 지구레코드와 계약했다. 이후 가수 구창모를 영입해 결성한 그룹 ‘송골매’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 등 히트곡을 쏟아내며 1980년대의 대표 록밴드로 자리매김했다. 요즘으로 치면 방탄소년단(BTS)이나 엑소와 같은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배철수에게 즐거웠던 음악이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는 지난해 KBS2 ‘대화의 희열2’에 출연했을 당시 “80년대에 밴드를 유지하려면 방송 활동만이 아니라 나이트클럽 공연을 계속해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무대에 올라가기가 싫어졌다”고 털어놨다. 그러던 중 우연히 친한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된 라디오 DJ로서의 활동은 뮤지션으로서 지쳐 있던 그에게 음악을 처음 할 때와 같은 재미와 신선함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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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수의 음악캠프’ 25주년 공개방송 당시 배철수. /사진제공=MBC‘배철수의 음악캠프’ 25주년 공개방송 당시 배철수. /사진제공=MBC


배철수의 음악캠프. /사진제공=MBC배철수의 음악캠프. /사진제공=MBC


그렇게 시작한 배캠으로 배철수는 음악의 ‘생산자’에서 ‘전달자’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방송을 이끌어 온 원동력은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과 애정이다. 지금도 배철수는 올드팝뿐만 아니라 해외의 10대들이 즐겨 듣는 최신 팝송까지 두루 섭렵한다. 매년 일본에서 열리는 ‘서머소닉 록 페스티벌’을 찾아 최신 음악을 피부로 느끼고 온다. 매너리즘에 빠질 법도 한 방송 준비에도 한결같이 철저하다. 방송이 시작되기 2시간 전부터 미리 스튜디오에 도착해 방송에 나오는 모든 음악을 직접 선곡한다. 최상의 방송 컨디션을 위해 그의 모든 생활은 라디오 방송 위주로 돌아간다. 매일 점심 무렵부터 방송국 근처에 가 있고, 술도, 담배도, 저녁 약속도 하지 않는다. 일과 후에는 집에서 책을 읽는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라디오 방송에 지각한 적이 없다. 오죽하면 주변에서는 그를 ‘배칸트’라고 부른다. 매일 시계바늘처럼 규칙적으로 활동하고 절제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 칸트와 같다고 붙인 별명이다.

그의 말투는 부드럽지는 않지만, 솔직담백하다. 돌려서 이야기하는 법이 없어 까칠하게 들리기도 한다. 때문에 초반에는 청취자와 다투기도 했다. 하지만 그 까칠한 듯 구수한 말투와 솔직함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방송을 처음 시작할 때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는 하지 마라’, ‘차라리 음악을 틀면 되니 쓸데없는 말을 너무 길게 하지 마라’ 등 당시 배캠 PD이자 현재 아내인 박혜영의 조언은 DJ로서 그가 자신의 색깔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둘은 1991년 결혼해 두 아들을 뒀다.

올해는 배철수가 TV에서 토크쇼를 시작한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다. 그는 2018년까지 KBS1 ‘콘서트 7080’의 진행자로 14년간 활약해왔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TV 토크쇼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월부터 방송 중인 MBC ‘배철수 잼(Jam)’은 배철수가 음악을 통해 사회 각 분야 유명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함께 수다를 나누는 토크쇼다. 최근 ‘배철수 잼’ 기자간담회에서 프로그램을 맡은 최원석 PD는 “배철수는 연륜이 있으면서도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나이가 한참 어린 저보다도 요즘 세대에 앞서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대한민국에서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세대를 다 아우르는 진행자”라고 그를 소개했다. 배철수는 “우리 사회 가장 큰 문제는 세대간 불화“라며 “조금만 역지사지하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 세대에게 먼저 손 내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배철수 잼’을 통해 근사하게 나이 먹어가는 어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제 친구들이 저보고 참 철없다고 말을 많이 해요. 제가 젊게 사는 건 새로운 음악을 계속 듣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이가 되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꺼리고 배타적으로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귀엽게는 못될지언정 고약한 노인네는 안 되는 게 목표입니다.”


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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