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늦은 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재난수당 정책 엇박자를 우려한 것은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모두에게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어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24일 전체 도민에게 1인당 10만원씩 주겠다고 발표했고 25일에는 경기 광명시와 여주시 등이 추가로 5만~10만원을 얹어준다고 밝혔다. 이처럼 각 시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명목으로 재난수당 정책을 너나없이 추진하면서 지역별 위화감이 불거지고 정부 지원책과 중복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중앙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지자체의 재정여건이 악화되면 차후 중앙정부에 손을 벌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①대상도 금액도 중구난방=경기 광명시는 이날 31만6,000명의 모든 시민에게 1인당 5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기로 했다. 앞서 발표한 경기도 지급분 10만원까지 포함하면 1인당 15만원을 받게 된다. 예산 158억원은 시 재난관리기금으로 쓰인다. 경기 여주시도 재난기본소득 10만원을 소득과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시민에게 준다. 따라서 여주시민들은 1인당 20만원을 받는다. 경기도의 경우 1조3,642억원을 들여 1,326만명에게 지급한다. 다만 경기도는 장덕천 부천시장이 “전 도민에게 10만원을 주는 것보다 소상공인에게 400만원을 주는 게 낫다”고 공개 비판하자 부천시민은 빼고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지자체들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21일 용도가 정해져 있는 재난관리기금을 활용하도록 허용한 뒤 이를 재원으로 쓰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17개 시도가 보유한 3조8,000억원 중 3조1,000억원까지 사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 총리가 제시한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을 위해’라는 가이드라인과 모두에게 지급하는 방식은 맞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쌓아둔 재난기금 규모와 지자체 곳간 사정 차이로 형평성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서울시(7,266억원)와 경기도(1조2,190억원)와 달리 부산(1,601억원), 대전(1,658억원), 경남(2,133억원), 전남(938억원) 등 상당수 지자체는 곳간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 이로 인해 기본소득대전네트워크가 이날 성명서를 통해 대전 거주인 모두에게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촉구하는 등 너도나도 해달라는 요구가 개별 지역마다 빗발친다. 익명의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지방정부가 매번 돈이 모자란다고 더 달라는 요구를 많이 하면서도 이번에도 돈을 뿌리고 있다”며 “결국 중앙정부에 추가로 요구할 것으로 본다”고 꼬집었다.
②중앙정부 컨트롤 못하고 통제 불능=그럼에도 중앙정부는 이를 제어할 장치가 없다.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할 때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거쳐야 하지만 1회성 사업이고 긴급재난구호 성격이라는 이유로 예외로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침에 따르면 당해 연도 사업이고 재난이라는 긴급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어서 굳이 협의하지 않아도 지자체가 추진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로 인해 전문가들은 중앙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지자체가 일괄적으로 시행하도록 해야지 지금처럼 지급 액수와 방법을 다르게 해서는 논란만 커진다고 강조한다. 신석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정된 예산으로 어떻게 잘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며 “지역 간 편차가 발생할 수 있어 중앙과 지방이 코디네이트를 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③전 국민 지급은 재원도 실효성도 떨어져=홍 경제부총리는 재원부담과 효과 측면에서 보편적으로 나눠주는 방안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한정된 재원을 방역과 피해계층 지원에 과감하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재난기본소득으로 국민 1인당 1,200달러를 지급한다고 밝혔으나 우리는 달러를 찍어내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수십조원의 재난수당을 지급하려면 적자국채를 추가로 발행해야 하고 이럴 경우 재정건전성이 급격하게 무너지게 된다.
게다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고소득자까지 돈을 받는다는 것은 당초 목적과 달리 소비진작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한 핵심관계자는 “모두에게 같은 금액을 주느니 차라리 필요한 사람에게 2배·3배로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이유로 정부는 선별적으로 주되 지자체와 중복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코로나19로 급격히 경제가 위축된 것은 감염병으로 인해 활동 자체가 멈춘 영향이 크다. 소비진작 효과는 굉장히 미미할 수밖에 없다. 박정수 서강대 교수는 “지자체나 중앙정부나 결국 재정이라 합쳐서 봐야 한다”며 “전략적으로 재정을 적절하게 써야지 중구난방으로 하면 낭비가 생긴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날 “기본소득으로 줄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재원의 한계가 너무나 분명하다”며 “코로나19로 직간접적 타격을 입은 분들에게 우선 지원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세종=황정원·한재영기자 garden@sedaily.com